《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이름난 극작가, 일제 말 친일 연극에 협력한 것으로 지적됨

| 생몰 | 1912 ~ 1970 |
| 시대 | 일제강점기 |
| 본관 | 평택 임씨 |
임선규(1912?~1970 추정)는 일제강점기의 연극인이자 극작가입니다. 본명은 임승복이며, 평택 임씨로 분류되어 있습니다(본관은 위키백과 분류를 따랐고 본문에는 본관 명시가 없어 확인이 더 필요합니다). 충청남도 논산의 가난한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지지만 1910년 또는 1914년생이라는 설도 있어 생년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1932년경 조선연극사에 들어가 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1933년 여배우 문예봉과 결혼했습니다. 1936년 동양극장에서 상연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속칭 《홍도야 우지마라》)가 큰 인기를 얻어 당대 최고의 흥행 극작가가 되었습니다. 1939년 극단 아랑에서 《김옥균》《동학당》 같은 역사극을 올리는 등 모두 80여 편을 썼습니다.
그의 작품은 가정 비극을 통속적으로 풀어내며 자연스러운 대사와 기교적 구성으로 관객을 울리는 특색이 있어 한국적 멜로드라마의 전형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편 태평양전쟁기에는 조선총독부 주최 연극 경연 대회에 작품을 내고 조선연극문화협회 이사를 맡았으며 지원병 제도를 찬양한 《동백꽃 피는 마을》 등을 발표했습니다. 이 때문에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과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올랐습니다.
동양극장은 1930년대 경성의 대표적 상업극장으로, 임선규의 대표작이 이곳에서 상연되었습니다. 지방 공연에서는 몰려드는 관객 때문에 배우들이 묵을 숙소가 없었다는 일화가 전합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명단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는 연극·영화 부문으로 그의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족보월드는 이를 평가가 아닌 기록으로 소개합니다.
광복 후 한동안 작품을 쓰지 못하다 1945년 12월 활동을 재개했고, 1948년경 아내 문예봉을 뒤따라 월북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후 행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사망 시기도 1970년 봄설과 월북 직후설 등으로 갈립니다.
사망 시기와 장소가 분명하지 않아 묘소 정보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