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남 준론의 문신, 대사헌·개성유수, 호는 약산, 시호 충장

| 생몰 | 1689 ~ 1745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동복 오씨 |
오광운(吳光運, 1689~1745)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동복, 자는 영백(永伯), 호는 약산(藥山), 시호는 충장(忠莊)입니다. 고조부는 예조판서 오준, 부친은 돈녕부도정 오상순이며 아내는 안동 권씨입니다. 1719년 문과에 급제해 예조좌랑·홍문관 수찬·동부승지를 거쳐 한성부 우윤·형조참판·예조참판·대사헌·개성부 유수를 지냈습니다.
무신란(1728)과 관련된 공로가 참작되어 사망 직후 이조판서 겸 대제학에 추증되었고, 1788년 정조 때 시호 충장을 받았습니다. 당파는 청남 준론에 속했는데, 남인이 정권에서 대부분 밀려난 영조 시대에 대사헌까지 오른 점이 눈에 띕니다.
아들 오대관은 1732년 정시 문과에서 장원급제했고, 시문집 『약산만고(藥山漫稿)』가 전합니다. 『약산만고』 원본 사진이 위키미디어 공용에 공개되어 있으며 저자는 오광운과 오병서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17세기 오정위·오시수 등의 뒤를 이은 18세기 동복 오씨의 대표 문신입니다.
영조 때는 탕평책이 추진되었으나 소론·남인이 연루된 무신란(1728)이 일어나 남인은 정계에서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오광운이 대사헌에 오르고 개성유수를 맡았다는 점은 그가 학식과 처신으로 인정받았음을 시사합니다. 무신란과 관련된 공로가 사후 추증과 시호의 근거가 되었다는 설명은 그가 반란 진압에 협조한 인물로 평가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구체적 공로의 내용은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고조부는 오준, 부친은 오상순, 아들은 1732년 정시 문과 장원 오대관입니다.
출처: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계통 자료. 족보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묘소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충장(忠莊)이며 1788년 정조 때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