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기문중을 이룬 보성 오씨 10세조

| 생몰 | 1426 ~ 1507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보성 오씨 |
오인후(吳仁厚, 1426~1507)는 조선 전기 보성 오씨의 10세손으로, 세종시 향토문화대전이 삼기문중(三岐門中)을 이룬 인물로 소개합니다. 앞 세대의 오숙동이 청주 현도에 정착한 뒤, 그의 후손이 세종시 부강면 일대로 이어지는 중심에 서 있습니다.
향토문화대전에 따르면 12세 오천령(1483~1532)의 후손이 부강면 노호리에, 12세 오억령(1486~?)의 후손이 금호리에 세거했다고 합니다. 노호리의 인봉비(1884)와 금호리의 마을은 이 문중의 흔적으로 소개됩니다.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 상삼리 312-1에는 삼기문중 재실이 있으며 청주시 향토유적 제60호로 2015년 4월 17일 지정되었습니다. 소유는 보성오씨 이조판서공파 문중으로 적혀 있습니다. 오인후의 관직이나 업적은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고, 문중의 시조격 인물로서의 위치만 확인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