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대장군으로 조선 개국에 참여해 일등공신이 되었으나 제1차 왕자의 난 때 처형된 인물

| 생몰 | 1398 |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보성 오씨 |
오몽을(吳蒙乙, ?~1398)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동한 문신이자 무신으로 본관은 보성(寶城)입니다. 위키백과는 보성 오씨로 분류하며, 생년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고려 말에는 대장군을 지냈고 이성계를 추대하는 데 공을 세웠다고 전합니다.
1392년 7월 17일 조선이 개국하면서 개국공신 일등에 책봉되었고, 보성군(寶城君)에 봉해졌다고 합니다. 연산부(연안) 수령과 강원도관찰사를 지냈으며, 한 자료는 이조판서를 지냈다고도 적고 있으나 다른 자료에서는 이조판서를 오연찰로 보는 설명이 있어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안대군 쪽에 의해 좌천되어 유배되었다가 음력 10월 10일 참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개국공신 목록에서 공신 자격을 박탈당한 '추탈자'로 분류됩니다. 위키백과 항목은 2012년부터 출처 표기가 요청된 상태이므로, 세부 연도와 관직은 『조선왕조실록』 등 1차 자료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커먼즈에 올라 있는 『보산세고(寶山世稿)』 목록에는 오경윤·오몽을·오성채·오윤현·오자경·오정표의 이름이 함께 적혀 있어, 이 문집이 보성 오씨 여러 인물의 글을 모은 책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오몽을과 오자경의 계보 관계는 자료마다 다르게 설명됩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