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경 吳子慶

이시애의 난을 평정해 보산군에 봉해진 세조 때의 무신, 시호 양무

보성 열선루 야경 · 오자경의 사진이 아니며 본관지 보성의 누각입니다 · CC0 · 레이저마인드 · Wikimedia Commons
보성 열선루 야경 · 오자경의 사진이 아니며 본관지 보성의 누각입니다 · CC0 · 레이저마인드 · Wikimedia Commons · CC0 (레이저마인드, Wikimedia Commons)
생몰1414 ~ 1478
시대조선 전기
본관보성 오씨

생애 약력

오자경(吳子慶, 1414~1478)은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보성이며 자는 길보, 시호는 양무(襄武)입니다. 1454년 무과에 합격해 내금위에 속했고 이후 북방 군관이 되었습니다. 세조 즉위를 도운 공으로 좌익원종공신 2등에 올랐습니다.

1461년 첨지중추원사로 발탁되었고 함길도 진무와 경원부사를 지냈습니다. 1466년에는 무과 중시와 등준시에 잇따라 합격했습니다.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정충적개공신 3등에 책록되고 보산군(寶山君)에 봉해졌습니다.

1469년 평안중도절도사가 되었으나 1473년 전주에 유배되었다가 1475년 소환되어 직첩을 돌려받고 보산군에 다시 봉해졌습니다. 1478년 6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 오순은 공조참판에 이르렀고 장손 오찬은 가선대부에 올랐으며, 묘소는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보산원리에 있습니다.

이시애의 난과 공신

이시애의 난은 1467년 함길도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오자경은 이를 평정한 공으로 적개공신 3등에 올랐다고 합니다. 앞서 1466년에는 무과 중시와 등준시에 잇따라 합격했고, 이는 무과 출신 장수로서 이례적인 경력으로 소개됩니다.

1473년 전주에 유배되었다가 1475년 풀려난 일은 그의 경력에서 굴곡으로 꼽힙니다. 유배 사유는 이번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묘소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보산원리에 있습니다.

후손

아들 오순(공조참판), 장손 오찬(가선대부)이 전합니다. 양무공파의 파조로 모셔집니다.

🌳 이 인물을 시조 혹은 시작인물로 두고 내 족보월드 트리 시작하기 ⬆️ 내가 그린 족보트리에 이 인물을 최상위로 넣기
보성 오씨 가문. 우리 집안 보성 오씨 가계도를 온라인에서 무료로 그려보세요. 조상 확인은 제적등본 가이드 참고.

같은 보성 오씨 인물

오몽을고려 말 대장군으로 조선 개국에 참여해 일등공신이 되었으나 제1차 왕자의 난 때 처형된 인물오서종노론 계열 문신으로 1722년 신임옥사 때 국문 중 사망한 인물오숙동태종 때 왜구를 피해 보성을 떠나 청주 현도에 정착한 9세 입향조오인후삼기문중을 이룬 보성 오씨 10세조오유립노호리 입향조로 월송정을 짓고 노봉서원을 세운 보성 오씨 15세손오대붕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했다고 전하는 공주 출신 인물
무료로 족보 시작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