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의 핵심 인물로 이조판서를 지낸 문신, 호는 휴곡
| 생몰 | 1637 ~ 1716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동복 오씨 |
오시복(吳始復, 1637~1716)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동복, 자는 중초(仲初), 호는 휴곡(休谷)입니다. 1667년(현종 8) 문과에 급제해 정언·교리·지평 등 청요직을 지냈습니다. 숙종 때 남인이 집권하자 서인 실각에 힘을 보태 이조좌랑이 되었고, 1676년 승지에 올랐으며 이후 대사헌·이조참판·개성유수·경기도관찰사를 지냈습니다.
1680년 경신환국 뒤 강릉부사로 좌천되었다가 유배되었으나 기사환국 뒤 이조참판으로 복직해 한성부판윤·호조판서·공조판서·이조판서를 거쳤고, 판의금부사와 우참찬·좌참찬도 지냈습니다. 대백과 계통 자료는 글씨에도 능했다고 소개합니다.
갑술환국으로 다시 관직에서 물러나 유배되었고 1697년 사면되어 잠시 우부빈객을 지냈으나, 1701년 무고의 옥에 연루되어 다시 유배되었으며 1716년 유배지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같은 시대의 오시수와 함께 숙종 때 남인을 대표한 동복 오씨 인물로 꼽힙니다.
오시복은 오시수와 같은 시기에 남인의 핵심으로 활동했으나 경신환국 이후의 운명은 달랐습니다. 오시수가 사사된 반면 오시복은 강릉부사로 좌천되었다가 유배되었고, 기사환국 뒤에는 이조판서까지 올랐습니다. 숙종 때 세 번의 환국(1680·1689·1694)을 모두 겪고 1701년 무고의 옥에도 연루되었으니, 그 시대 정치가 개인의 삶에 미친 영향을 잘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80세에 가까운 나이까지 살았다는 점도 같은 시대 인물 가운데서는 드문 경우입니다.
경신환국(1680)에 좌천·유배, 기사환국(1689)에 복직, 갑술환국(1694)에 다시 퇴진했고 1701년 무고의 옥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계통 자료. 족보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묘소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조판서와 호조판서 등을 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