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좌의 난 때 박필현 부자를 고변해 분무공신이 된 인물(소와당)

| 생몰 | 1695 ~ 1739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충주 박씨 |
박동형(朴東亨, 1695~1739)은 충주 박씨 참판공파 충원군파의 파조로 소개되는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자는 수부(秀夫), 호는 소와당(笑臥堂) 또는 만촌이며 봉호는 충원군(忠原君)입니다. 1695년 음력 7월 3일 상주 공성면에서 박세량과 개성 차씨의 아들로 태어났고, 큰아버지 박세화의 양자로 들어갔습니다. 충주 박씨 19세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728년(영조 4) 3월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상주진 파총이던 그는 상주에 숨어든 박필현 부자를 수상히 여겨 영장에게 알렸고, 이로 인해 이들이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이 공으로 같은 해 4월 분무공신 3등에 책봉되어 충원군에 봉해졌고, 훈호는 '수충갈성결기효력분무공신'이었습니다. 일부 자료는 '양무공신'으로 적고 있어 공신호 표기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이후 가선대부 첨지중추부사, 동지중추부사, 오위장을 지냈고 1733년 광양현감에 제수되었으나 전세 문제로 체포되었다가 영의정 심수현의 건의로 장형을 면했다고 합니다. 1739년 2월 43세로 세상을 떠났고 공조판서 겸 지의금부사로 추증되었습니다. 그의 공신화상(초상)은 보물 제192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승정원일기 등 일부 자료에서는 이름이 박동현으로 적혀 있습니다.
1728년 3~4월 상주에서 박동형은 파총으로서 반란 가담자 박필현과 아들 박사제가 숨어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이들이 갓 장식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수상히 여겨 영장 한날에게 알렸고, 곧 체포로 이어졌다고 전합니다.
나무위키는 야사와 실록의 서술이 다르다고 짚으며 실록을 근거로 야사를 반박합니다.
1728년 4월 26~29일 사이에 분무공신 3등으로 책봉되어 충원군에 봉해졌고, 5월에 가선대부 첨지중추부사와 동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습니다. 9월에는 오위장을 겸했으나 12월 부모의 병환으로 고향에 내려간 뒤 기한을 넘겨 교체가 논의되기도 했습니다.
1729년에는 생활이 곤궁하다는 점이 조정에서 거론되어 물품을 사급하고 역적의 전민을 공신들에게 나누어 주는 방안이 논의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공신화상은 전신좌상으로 보물 제1927호입니다. 큰아들 박완신(1722~1789)과 양손자 박중목(1740~1831) 등이 족보에 전하나, 이들의 관직 이력은 교서나 녹권으로 입증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후손은 상주 공성·청리 일대의 공주파(상주) 계열로 소개됩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네, 보물 제192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위키백과는 분무공신 3등으로 적고, 일부 자료는 양무공신으로 적습니다. 자료마다 표기가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