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개 朴漑

영의정 박순의 맏형으로 이름난 처사(연파처사)

👤
생몰1511 ~ 1586
시대조선 중기
본관충주 박씨

생애 약력

박개(朴漑, 1511~1586)는 충주 박씨 박우(박우)의 장남이자 영의정 박순의 형으로, 자는 대균(大均), 호는 연파처사(烟波處士)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났고, "자식으로서 배울 것은 효도만 한 것이 없다. 곤궁할지 현달할지는 하늘에 달려 있으나 효도는 내 하기 나름"이라 말해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고 전합니다. 사자소학 효행편에서 배운 대로 행동해 아버지가 자랑을 해도 흉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열여덟 살에 처음 과거를 보러 갔다가 시험장에서 인파에 밟혀 죽은 선비를 보고 "첫째를 다투느라 사람이 죽어도 돌보지 않으니 이것이 어찌 어진 이가 함께할 일이겠는가" 하며 과거를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그 길로 아버지의 고향 광주 송정리에서 은둔했고, 친족과 처족 중 굶는 이에게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주고 상을 치르지 못하는 이나 혼례를 치르지 못하는 친척의 비용을 대는 등 베풀기를 즐겼다고 합니다.

나룻배에서 거문고를 타며 읊은 시가 소문나 선조에게까지 알려졌고, 임금이 어사를 보내 살피게 한 뒤 여러 차례 벼슬을 내리려 했지만 그는 거절했습니다. 선조가 경연관이던 아우 박순에게 형을 설득하라고 명해, 예순이 넘은 처사는 마지못해 한성부 참군에 제수되었고 곧 고산현감, 통정대부 품계를 거쳐 김제군수로 1년을 지낸 뒤 자연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76세인 1586년 연파정에서 거문고와 노래 속에 시 한 수를 남기고 별세했다고 전하며, 이러한 일화는 야사와 《국조인물고》 기록이 섞여 있어 사실과 구분해 읽는 것이 좋습니다.

신동과 효행

박개는 어린 시절 사자소학의 효행 대목을 몸소 실천하는 신동으로 이름났습니다. 아버지 박우가 걸핏하면 아들 자랑을 해도 주위가 흉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그의 평판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보여줍니다.

과거를 접고 은둔하다

18세 때 처음 본 과거에서 사람이 압사하는 사고를 목격한 일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이후 광주 송정리에서 베풀며 살았고, 나룻배에서 거문고를 타는 풍류가 선조의 귀에까지 들어갔다고 합니다. 선조가 보낸 어사는 거문고와 책으로 가득한 집, 강둑 정자에 누워 시조를 읊조리는 백발의 노인을 보고했다고 전합니다.

만년의 벼슬과 죽음

선조의 명으로 아우 박순이 설득하자 박개는 한성부 참군, 고산현감을 거쳐 통정대부에 올랐고 김제군수를 한 해 지낸 뒤 물러났습니다. 1586년 76세로 세상을 떠나던 날 들것에 실려 연파정으로 가서 문상객을 맞고 노래와 가야금 속에서 시를 남겼다고 전합니다.

묘소

연파정에서 별세했다고 전하며,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박개 자주 묻는 질문

연파처사란 무엇입니까?

박개의 호로, '안개 낀 물결 위의 처사'라는 뜻이며 벼슬을 마다한 은사의 이름으로 전합니다.

박개와 박순의 관계는?

박개는 박우의 장남이고 영의정 박순의 형입니다.

🌳 이 인물을 시조 혹은 시작인물로 두고 내 족보월드 트리 시작하기 ⬆️ 내가 그린 족보트리에 이 인물을 최상위로 넣기
충주 박씨 가문. 우리 집안 충주 박씨 가계도를 온라인에서 무료로 그려보세요. 조상 확인은 제적등본 가이드 참고.

같은 충주 박씨 인물

박순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학자·시인(사암 박순)박상단경왕후 신씨 복위를 상소한 중종대의 문신(눌재)박우강원도관찰사·대사헌을 지낸 중종대의 문신(육봉)박이룡임진왜란 때 사재를 털어 의병을 일으킨 문신(학촌)박용철《시문학》을 창간한 시인·문학 평론가(용아)박찬호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선수로 활약한 야구 선수
무료로 족보 시작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