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 朴憲永

조선공산당·남조선로동당 지도자, 북한 초대 부수상 겸 외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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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900 ~ 1955
시대일제강점기~북한
본관영해 박씨

생애 약력

박헌영(朴憲永, 1900년 5월 28일~1955년 12월 5일)은 일제강점기의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정국의 조선공산당·남조선로동당 지도자입니다. 본관은 영해이며, 위키백과는 영해 박씨 태사공파의 후손이자 박제상의 56대손으로 서술합니다. 충남 예산군 신양면에서 몰락한 양반가 출신 박현주와 소실 이씨 사이의 서자로 태어났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를 이끌다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았고, 1927년 재판에서 광인을 가장해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모스크바로 탈출했습니다. 1940년 이후에는 광주의 벽돌·기와 공장 노동자로 위장해 국내 노동운동을 이어 갔습니다. 1945년 광복 직후 조선공산당을 재건하고 민주주의 민족전선 등에서 좌익의 중심 정치인으로 활동했습니다.

1948년 미군정의 좌익 탄압을 피해 월북해 같은 해 9월 정부 수립 뒤 부수상 겸 외무상을 지냈으나, 한국전쟁 뒤 김일성에 의해 전쟁 패배의 책임과 미국의 간첩이라는 이름으로 숙청되었습니다. 그의 평가는 독립운동과 월북 후의 행적, 숙청을 둘러싸고 크게 갈립니다. 이 사이트는 평가를 단정하지 않고 위키백과의 사실 서술만 옮깁니다.

출생과 가계

1900년 충남 예산군 신양면에서 태어났으며, 위키백과는 몰락한 양반가 출신의 지주이자 상인인 아버지 박현주와 사별한 뒤 국밥집을 하던 전주 이씨 어머니 사이의 서자라고 적습니다. 할아버지는 박홍원이며 세 아들 가운데 둘째가 아버지였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의 지도자였던 그는 체포 뒤 고문을 받았고, 1927년 광인을 가장해 병보석을 얻어 모스크바로 탈출했습니다. 1940년 이후에는 광주에서 노동자로 위장해 활동했다고 합니다.

해방 이후와 월북

1945년 조선공산당을 재건했으나 북조선분국을 중심으로 한 당 통합 과정에서 그가 조직한 조선공산당은 와해되었습니다. 1948년 월북했고 같은 해 북한 정부의 부수상 겸 외무상이 되었으나 한국전쟁 뒤 숙청되었습니다.

묘소

숙청 이후 묘소는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박헌영 자주 묻는 질문

박헌영의 본관은 어디입니까?

영해 박씨이며, 위키백과는 태사공파의 후손으로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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