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의 아들, 문하시중, 딸이 현종의 제6비 원목왕후, 시호 간경(원숙)
| 생몰 | 1042 |
| 시대 | 고려 중기 |
| 본관 | 이천 서씨 |
서눌(?~1042)은 고려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이천이며 서희의 아들입니다. 996년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했고, 1016년 중승, 1017년 형부시랑을 거쳐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습니다. 1018년 이후 상서이부시랑, 국자좨주 등을 지냈고 1031년 검교태사를 거쳐 문하시중에 올랐습니다.
딸이 현종의 제6비인 원목왕후가 되면서 중추사·문하시랑 등에 임명되었습니다. 정종 때에는 판도병마사로서, 거란이 압록강 동쪽에 성과 보루를 쌓은 일을 들어 사신 편에 표문을 보내 화친 논의를 파기하자고 건의했고, 왕이 이를 따랐다고 전합니다. 아버지 서희가 거란과 담판했던 외교 경험이 이어진 대목입니다.
1041년 궤장을 하사받고 중대광에 올랐으며, 1042년 병이 깊어지자 왕이 문병하고 삼중대광 내사령을 추증했고 자손에게 영업전을 내렸습니다. 시호는 간경이며 정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습니다. 1086년 선왕의 시호를 피해 원숙으로 고쳤습니다. 이로써 서필·서희·서눌 3대가 모두 왕의 묘정에 배향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고려 때 '배향공신'은 임금이 세상을 뜬 뒤 그 묘정(종묘)에 함께 모셔지는 신하를 말합니다. 서필은 광종, 서희는 성종, 서눌은 정종의 묘정에 각각 배향되어 3대가 배향공신이 되었다는 사실이 이천 서씨를 대표하는 가문의 영예로 전해집니다.
이천 서씨는 인주 이씨·해주 최씨·남양 홍씨와 함께 고려의 4대 명문으로 꼽히며, 서필·서희·서눌·서정·서균·서공·서순 등 재상이 이어져 '7대에 걸쳐 재상이 나왔다'는 설명이 널리 쓰입니다.
기록에 확인되지 않음
딸 원목왕후는 현종의 비가 되었습니다. 서눌의 아들 대에서 이천 서씨의 재상 계보가 이어져 서정 등이 나왔다고 전합니다(손자 서정은 서희의 손자로 위키백과에 올라 있으므로 서눌과의 부자 관계는 족보로 확인하세요). 본관 이천 서씨 문서도 함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