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필 徐弼

고려 광종 때 내의령을 지낸 문신, 서희의 아버지, 시호 정민

여주 산북면 서희 묘역(서필의 묘가 바로 아래에 있다고 전함) · 공공누리 1유형 · 한국학중앙연구원·유남해 · Wikimedia Commons
여주 산북면 서희 묘역(서필의 묘가 바로 아래에 있다고 전함) · 공공누리 1유형 · 한국학중앙연구원·유남해 · Wikimedia Commons · 공공누리 제1유형 — 한국학중앙연구원·유남해 · Wikimedia Commons
생몰901 ~ 965
시대고려 초기
본관이천 서씨

생애 약력

서필(901~965)은 고려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이천이며, 시조 서신일의 아들입니다. 태조 때 도필(刀筆), 곧 문서를 다루는 실무직으로 벼슬길에 올랐고 광종 때 내의령에 이르렀습니다. 어머니는 합천 홍씨 홍찬의 딸, 부인은 평양 황씨로 전하며, 아들 서염·서희·서영을 두었습니다.

서필은 검소한 성품으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광종이 재상들에게 금술잔을 내려 주었을 때 혼자 받지 않았다고 하며, 광종이 쌍기 등 중국에서 귀화한 인물을 지나치게 대접하고 대신들의 집을 빼앗아 중국인에게 나누어 주자 이를 비판한 일도 『고려사』를 바탕으로 한 기록에 전합니다.

죽은 뒤 삼중대광 태사 내사령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정민(貞敏)이며 광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습니다. 이천 서씨가 고려 문벌로 올라서는 데 아버지 서신일이 기반을 놓고, 서필이 중앙 관직에서 처음 자리를 굳혔다는 점에서 가문의 실질적인 첫 재상으로 평가됩니다.

광종 시대와 서필의 간언

고려 광종(재위 949~975)은 과거 제도를 시행하고 노비안검법을 펴는 등 왕권을 강화한 임금입니다. 그 과정에서 쌍기 같은 후주 출신 인물을 중용해 기존 호족 세력과 갈등이 생겼습니다. 서필이 중국인에게 집을 나누어 주는 일을 비판한 것은 이런 정치 분위기 속에서 나온 직언이었습니다.

다만 이런 일화는 후대 사서에 정리된 기록이므로 세부 표현까지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청렴하고 곧은 신하'라는 평가가 오래 전해졌다는 정도로 보는 것이 안전합니다.

서신일에서 서필로, 가문의 기틀

『이천 서씨』 계보는 서신일 → 서필 → 서희로 이어집니다. 신라 말 이천 일대에 터를 잡은 호족이었던 서신일의 아들 서필이 광종 때 중앙 관직에서 재상급에 오르면서, 이천 서씨는 지방 호족에서 중앙 귀족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서필의 사촌으로는 서신통의 아들 서목이 전하는데, 이천이라는 지명이 서목이 태조 왕건의 강 건너기를 도운 일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부 기사는 서목을 서희의 조부로 쓰기도 하는데, 위키백과의 계보와 차이가 있어 이 점은 확인이 필요합니다.

묘소

경기도 여주시 산북면 후리 일대 이천 서씨 선영(서희 묘 바로 아래에 있다고 전함)

후손

아들은 서염·서희·서영 세 사람으로 전하며, 서희의 후손이 서눌·서정·서공으로 이어져 고려 문벌이 되었습니다. 본관 이천 서씨 문서도 함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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