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 徐一

대종교 지도자, 중광단·북로군정서 총재, 대한독립군단 총재, 건국훈장 독립장

서일(徐一, 1881~1921) · CC0 · 국가보훈부 · Wikimedia Commons
서일(徐一, 1881~1921) · CC0 · 국가보훈부 · Wikimedia Commons · CC0 — 국가보훈부 · Wikimedia Commons
생몰1881 ~ 1921
시대일제강점기
본관이천 서씨

생애 약력

서일(1881~1921)은 함경북도 경원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이천이며 본명은 서기학(徐夔學), 아호는 백포(白圃)입니다. 1902년 경성군에서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육 활동을 하다가, 1911년 한일병합 뒤 국경을 넘어 만주로 망명했습니다. 이곳에서 대종교의 나철을 만나 감화를 받아 이듬해 대종교에 입교했습니다.

서일은 대종교 신자를 중심으로 독립운동 단체 중광단을 조직해 단장이 되었고, 1919년 김좌진 등 39명과 함께 길림에서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했습니다. 3·1운동 뒤에는 중광단을 대한정의단으로 개편하고, 무장 조직을 갖추어 대한군정서(흔히 북로군정서)로 이름을 바꾸어 총재를 맡았습니다. 김좌진과 이범석도 이 단체 소속이었습니다.

1921년 독립군 조직을 통합해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했으나, 같은 해 6월 28일 러시아 스보보드니(자유시)에서 독립군끼리 충돌한 자유시 참변(흑하사변)이 일어나 많은 동지를 잃었습니다. 서일은 이에 책임을 지고 두 달 뒤인 8월 28일 밀산에서 스스로 호흡을 멈추는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1992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습니다.

대종교와 만주의 독립군

대종교는 단군을 모시는 민족 종교로, 나철이 1909년에 중광(重光)한 뒤 만주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의 정신적 뿌리가 되었습니다. 서일이 이끈 중광단의 이름은 이 '중광'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일은 무력 투쟁과 민족 교육을 함께 중시했고, 북로군정서는 1920년 청산리 일대의 항일 전투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단체입니다.

다만 청산리 전투와 서일의 직접 관련은 위키백과 서일 문서에 따로 서술되어 있지 않으므로, 구체적인 전투 지휘는 김좌진·이범석 등의 이야기로 따로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자유시 참변과 마지막 선택

1921년 6월 28일 러시아 자유시(스보보드니)에서 독립군 부대끼리 무력 충돌과 소련군의 개입으로 많은 사상자가 난 자유시 참변은 만주 독립운동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서일은 이 참변의 책임을 지고 두 달 뒤 밀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습니다. 독립기념관에는 동지를 잃은 심경을 담은 어록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묘소

기록에 확인되지 않음(밀산에서 순국). 독립기념관에 어록비가 있다.

후손

부인은 채씨, 장녀 서모, 차녀 서죽청, 사위 최관, 아들 서윤제(1908~1969, 독립운동가), 자부 권씨, 손자 서경섭·서만섭이 전합니다. 본관 이천 서씨 문서도 함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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