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선 국회의원,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 국회부의장, KBO 총재
| 생몰 | 1937 ~ 2012 |
| 시대 | 현대 |
| 본관 | 영산 신씨 |
신상우(辛相佑, 1937~2012)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본관은 영산 신씨, 호는 범중입니다. 1937년 5월 20일 경상남도 양산군 하북면 순지리에서 태어나 부산사범학교부속국민학교, 부산대신중학교, 부산상업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고려대 재학 중 이기택과 함께 4·18 의거를 주도했다고 위키백과는 기술합니다.
1962년 부산일보 기자로 일했고, 1971년 신민당 소속으로 제8대 총선에 당선되어 정계에 들어섰습니다. 이후 제9·10대(신민당), 제11대(민주한국당), 제13대(통일민주당), 제14대(민주자유당), 제15대(신한국당)까지 모두 일곱 차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1985년 12대 총선에서는 낙선했고 민주한국당 부총재를 지냈으며, 1990년의 3당 합당에도 참여했습니다. 1992년에는 국회 국방위원장을 맡았습니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고,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한나라당 부총재와 제15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을 맡았습니다. 2000년 민주국민당 최고위원이 되었으나 제16대 총선 부산 사상구에서 낙선했고, 2001~2002년에는 노무현 후보의 부산지역 후원회장, 2003~2004년에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지냈습니다.
2006년 1월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에 취임했으나 구단 창단 과정의 논란 등이 겹쳐 2008년 12월 사퇴했고, 후임은 유영구였습니다. 2012년 1월 26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위키백과 본문은 향년 76세로 적었지만 생년월일로 계산하면 74세입니다. 영산 신씨 근현대 인물로 재계의 신격호·신춘호와 함께 정계의 대표 인물로 꼽힙니다.
1971년 제8대 총선에 당선된 뒤 일곱 차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재계의 영산 신씨로 신격호가 있습니다.
묘소는 이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