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 신씨 족보·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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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 신씨(靈山 辛氏) — 경남 창녕 영산을 본관으로 하며 고려 후기의 신돈과 현대의 롯데·농심 창업주를 낸 것으로 알려진 신씨의 한 본관입니다.

영산 신씨란

경남 창녕 영산을 본관으로 하며 고려 후기의 신돈과 현대의 롯데·농심 창업주를 낸 것으로 알려진 신씨의 한 본관입니다. 같은 신씨라도 본관(영산)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영산 신씨의 뿌리와 역사

영산 신씨(靈山 辛氏)는 옛 영산현, 곧 지금의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입니다. 시조는 고려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한 신경(辛鏡)으로 전하며, 한국족보 자료와 위키백과는 그가 송나라 '팔학사'의 한 사람으로 고려에 건너왔다고 소개합니다. 1138년(인종 16) 문과에 급제해 금자광록대부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고, 시호는 정의(貞懿)라고 전합니다. 위키백과 영어판은 2015년 기준 187,426명으로 집계했다고 적지만, 한국어판은 이 수치를 영월 신씨까지 합친 것으로 보여 줍니다. 본관별 정확한 인구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2000년 통계청 집계(세계일보 인용)로는 영산 신씨 83,798명, 영월 신씨 67,489명입니다.

시조 신경과 영산이라는 이름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신경은 중국 감숙성의 천축산과 창녕의 영취산 산세가 비슷하다고 여겨 창녕에 자리 잡았고, 후손들이 이 땅을 영산(靈山)이라 부르며 본관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선계(조상 계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합니다. 하나는 하나라 계왕의 아들 진(鎭)이 신(莘)씨를 받아 농서에 살다가 훗날 풀 초(艸)를 뗀 신(辛)씨가 되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농서의 여덟 성씨가 의형제를 맺고 고려로 왔다는 팔학사 설입니다. 또 신경의 4세손 신몽삼의 포항 묘비에 '영주'라는 글귀가 있어 초기에 영주(寧州)를 본관으로 썼다는 추측이 있고, 『신씨성관고』는 이를 귀화 성씨로 보지 않는다는 반론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어느 쪽도 단정할 수 없는 부분이므로, 이 페이지는 시조의 도래 경위를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전해지는 이야기로만 소개합니다.

고려 후기의 번영과 신돈의 몰락

신경의 9세손 무렵 영월로 분관해, 영산과 영월은 같은 뿌리의 두 본관이 되었습니다. 영산 신씨는 고려 후기에 가장 크게 번성했습니다. 신지화의 아들 세대에서 신천은 판밀직사사에, 신혁은 도첨의찬성사에 올랐고, 신혁의 손자 신예는 취성부원군, 또 다른 손자 신부는 취산군에 봉해졌습니다. 신부는 1360년 홍건적과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한편 영산 출신 승려 신돈은 공민왕의 신임을 받아 전민변정도감을 열었지만 1371년 처형되었고, 그 뒤 가문은 급격히 쇠퇴했다고 서술됩니다. 신돈의 가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도 함께 기억할 만합니다.

주요 파(派)

덕재공파, 초당공파, 상장군공파, 부원군파, 판서공파

덕재공파 (德齋公派)

덕재공파는 신지화의 장남 신천을 파조로 합니다. 신천은 1294년 과거에 급제해 판밀직사사에 올랐다고 전합니다. 충남 금산 제원면의 대산사에는 덕재 신천과 극재 신인거, 응청당 신정 세 분이 모셔져 있습니다.

파의 세부 계보와 세거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으니 족보로 확인하세요.

초당공파 (草堂公派)

초당공파는 신지화의 아들 신혁을 파조로 합니다(세계일보). 신혁은 도첨의찬성사에 이르러 영산부원군에 봉해졌고, 손자 신예와 신부가 이 계통에서 나왔습니다. 세계일보는 조선 시대 인물이 가장 많이 나온 곳이 이 파의 신유정 후손이라고 소개합니다.

충북 증평군 증평읍 덕상리에 영산신씨 초당공파 묘역(증평군 향토유적 제17호)이 있습니다. 묘역에 모셔진 분의 이름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상장군공파 (上將軍公派)

상장군공파는 상장군을 지낸 분을 파조로 합니다. 세계일보는 파조를 신성렬이라 하고, 위키백과는 8세 신공근 아래의 파로 적어 자료마다 다릅니다.

이 파의 세부 계보와 세거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부원군파 (府院君派)

부원군파는 신지화의 아들 신온(영월부원군)을 파조로 하며, 영월 신씨로 이어지는 파입니다. 위키백과는 부원군파·판서공파가 영월 신씨로 이어진다고 적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월 신씨를 보세요.

판서공파 (判書公派)

판서공파는 신지화의 네 번째 아들 신한을 파조로 하며(세계일보), 영월 신씨로 이어지는 파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월 신씨를 보세요.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신돈(공민왕 때 전민변정도감), 신예(취성부원군), 신부(취산군, 함종 전투 전사), 신유정(여말선초 무신), 신윤(지중추부사), 신격호(롯데 창업주), 신춘호(농심 창업자), 신동빈(롯데그룹 회장), 신동주(SDJ코퍼레이션 회장), 신상우(7선 국회의원)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영산 신씨

조선 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50여 명(자료에 따라 53명)과 공신 7명을 냈다고 합니다. 세계일보는 가장 많은 인물이 신부의 아들인 신유정의 후손에서 나왔다고 전합니다. 신유정은 왜구를 막고 북방을 지킨 무신으로, 조선 건국에 참여해 개국원종공신이 되었고 왜구를 여러 차례 물리쳤다고 합니다. 그의 아들 신인손은 예문관 대제학에 올랐고 손자 신석조는 세종 때 사가독서를 하고 『세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고 하나, 이 자료에서는 더 자세한 기록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중앙 관직의 평범한 사례로는 신윤이 있습니다.

근현대의 인물

근현대에는 울산 삼동면 둔기리 집성촌 출신의 신격호가 일본에서 롯데를 일으켜 한국으로 사업을 넓혔고, 동생 신춘호는 농심을 세워 라면 산업을 이끌었습니다. 이후 신동빈이 롯데그룹을 이끌고 있으며 신동주도 같은 가계의 기업인입니다. 정계에서는 7선 국회의원이자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인 신상우가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현존 인물은 공개된 공적 이력만 소개합니다.

파(派)의 구성

세계일보는 영산 신씨의 파를 덕재공파(신천), 초당공파(신혁), 상장군공파(신성렬)로 소개합니다. 위키백과는 8세 신지화 아래 덕재공파·초당공파·부원군파·판서공파가 있고 이 가운데 부원군파와 판서공파는 영월 신씨로 이어지며, 상장군공파는 8세 신공근 아래라고 적어, 세부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영월 신씨는 영월 신씨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유적과 문화유산

충남 금산군 제원면의 대산사는 덕재 신천, 극재 신인거, 응청당 신정 세 분을 모신 영산 신씨 문중 사당으로, 1959년 세우고 2008년 다시 지었으며 2011년 금산군 향토유적 제1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충북 증평군 증평읍에는 영산신씨 초당공파 묘역(덕상리, 2009년 증평군 향토유적 제17호)과 신경행 묘소(남차리, 2004년 충청북도 기념물 제132호)가 있습니다. 금산군 군북면 내부리에는 1928년 세운 영산 신씨 정려각이 있어, 17세에 혼인한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을 잃고 따라 세상을 떠난 신씨 부인(1857~1873)을 기린다고 하며 2011년 금산군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경남 창녕군 도천면 도천리의 창녕 열효신씨 정려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83호)는 고려 말 신사천과 왜적에 맞서 순절한 두 딸을 기려 1405년 세운 비로 전하며, 영산 신씨 문중이 관리합니다. 본관지 영산면에는 보물 제1739호 창녕 영산 석빙고, 영산읍성지, 영산 만년교 같은 옛 영산현의 유산이 남아 있습니다.

같은 '신'이라도 한자가 다릅니다

영산 신씨의 신은 맵다는 뜻의 신(辛) 자입니다. 한자가 다른 신(申)씨와 신(愼)씨, 신(慎)씨 등과는 별개의 성씨이므로 평산 신씨(申氏)나 고령 신씨(申氏)와 헷갈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같은 신(辛)씨로는 영산에서 갈라진 영월 신씨가 있으며, 세계일보는 신(辛)씨가 9개 본관에 약 18만 명이라고 소개하면서 영산과 영월이 대종을 이룬다고 전합니다. 이름이나 항렬만으로 본관을 짐작하지 말고 족보의 본관 표기를 확인하세요.

인물을 읽을 때 주의할 점

영월 신씨와 영산 신씨는 뿌리가 같아서 책과 기사에서 한 묶음으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이 페이지의 인물은 위키백과의 '영산 신씨' 분류와 각 인물 문서의 본관 표기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만 실었습니다. 예를 들어 시인 신석정이나 신건 전 국정원장처럼 이 사이트에서 영월 신씨로 분류된 인물은 영월 신씨 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시조 신경에 대해서는 생몰년과 행적이 많이 전하지 않아 별도의 인물 항목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자료의 한계

이번 정리는 위키백과와 세계일보 보도에 기댔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본문과 종친회 공식 자료는 직접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대종회의 공식 연락처와 항렬표도 확인하지 못해 싣지 않았으니, 정확한 계보와 항렬은 반드시 우리 집안 족보와 대종회에 확인하세요. 본관 인구와 인물의 소속 파는 자료마다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 영산 신씨 가계도, 이렇게 만드세요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영산)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영산 신씨 족보·계보도를 온라인으로. 종이에 그리다 지우지 말고, 무료로 시작해 계보를 세대별로 자동 정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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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 신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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