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정 辛有定

왜구 토벌과 북방 방어에 활약한 여말선초의 무신, 시호 무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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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353 ~ 1426
시대고려 말~조선 초
본관영산 신씨

생애 약력

신유정(辛有定, 1353~1426)은 여말선초의 무신으로 본관은 영산, 시호는 무절(武節)입니다. 할아버지는 신원경, 아버지는 홍건적과 싸우다 전사한 신부(辛富)이고 어머니는 청주 한씨입니다. 1360년 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얼마 뒤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 외가에서 자랐으며, 글공부 대신 활쏘기를 배웠다고 전합니다. 아들은 신인손(1384~1445)이고 손자는 신석조입니다.

음직으로 산원에 보임된 뒤 정용호군에 올랐고, 1386년(우왕 12) 족형 이승원을 따라 비인 일대의 왜구 토벌에 나서 머뭇거리는 이승원을 독려해 승리를 이끌었다고 합니다. 1388년 남원 전투에서는 말이 넘어진 뒤에도 왜적을 제압해 죽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성계를 몇 해 따르다 조선이 서자 원종공신이 되어 토지와 노비를 받았고, 1393년 삼사좌자의·형조의랑·병조의랑을 지냈습니다.

1397년 15진이 설치될 때 이산진첨절제사로 뽑혔고, 1398년 가선대부에 올랐으나 제1차 왕자의 난 뒤 남은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파직되어 외방에 부처되었습니다. 1400년 이방원이 세자에 책봉될 때의 천거로 판봉상시사가 되었으며, 1403년 강원도조전병마사로 나가 강릉 일대의 왜구에 대응했습니다. 임기를 마치자 강릉 사람들이 생사당을 세웠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1406년 노비 귀속 문제로 대사헌과 부딪혀 평택에 유배되었고, 1407년 의주도병마사 시절 요동 명군의 강매를 막지 못했다는 탄핵으로 칠원에 유배되는 등 굴곡도 겪었습니다. 1410년 야인이 경원을 침범하자 좌군도총제로 토벌에 나섰고, 1411년 충청도병마도절제사, 1414년 평안도도안무사를 지냈습니다. 『세종실록』 졸기는 그를 강직하고 고집이 세며 남의 잘못을 참지 못했다고 평하고, 권근은 사심 없이 곧아 원망이 적었다고 적었습니다. 1426년(세종 8) 6월에 7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왜구 토벌

1386년 비인 일대와 1388년 남원 전투, 1403년 강릉 방어 등 여러 차례 왜구와 맞섰습니다. 강릉 사람들이 생사당을 세웠다고 전합니다.

아버지 신부

아버지 신부는 1360년 홍건적과의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묘소

묘소의 정확한 위치는 이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손

아들 신인손(1384~1445), 손자 신석조. 영산 신씨 조선 시대 인물의 상당수가 그의 후손에서 나왔다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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