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 때 취산군에 봉해지고 함종 전투에서 홍건적과 싸우다 전사한 관료
| 생몰 | 1360 |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영산 신씨 |
신부(辛富, ?~1360)는 고려 후기의 관료로 본관은 영산입니다. 증조부는 예부원외랑을 지낸 신지화, 조부는 도첨의찬성사 신혁, 아버지는 합문지후를 지내고 사후 도첨의좌정승·영산부원군에 추증된 신원경입니다. 형 신예는 취성부원군에 봉해졌고, 동생으로 신순(판도판서)·신귀(판서)·신돈이 전합니다. 부인은 한양부원군 한종유의 다섯째 딸로 기록되어 있어, 당대 명문과 혼인한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사의 경위와 초기 경력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 없습니다. 1355년(공민왕 4) 취산군(鷲山君)에 봉해졌고, 이후 판개성부사에 임명되었습니다. 이름이 다시 크게 기록에 나타나는 것은 홍건적의 침입 때입니다.
1360년(공민왕 9) 2월 15일, 신부는 함종(지금의 평안남도 일대)에서 홍건적과 맞서 싸우다 장군 이견과 함께 전사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고려군은 승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고려사』 「공민왕세가」와 「안우전」, 『씨족원류』 등이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쓰입니다.
신부의 두 아들 가운데 장남 신유현은 이성도병마사를 지내고 1411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차남 신유정(1353~1426)은 조선 초기에 평안도도안무사를 지내고 시호를 무절(武節)이라 받은 무신입니다. 신유정이 여덟 살이던 1360년 아버지를 잃었다는 기록은 신부의 전사 시기와 맞물립니다. 같은 영산 신씨 안에서 형 신예가 정방에서의 권력으로, 동생 신돈이 개혁과 몰락으로 이름을 남긴 것과 달리, 신부는 전장에서 순직한 무장형 관료로 기억됩니다. 다만 출생 연도와 학문·성품은 전하지 않아, 확인된 사실은 봉작과 전사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1360년 2월 신부는 함종에서 홍건적과 싸우다 장군 이견과 함께 전사했고, 전투 자체는 고려군이 이겼다고 전합니다.
둘째 아들 신유정은 조선 초기의 무신으로 평안도도안무사를 지냈습니다. 형 신예, 동생 신돈도 함께 보세요.
묘소는 이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신유현(?~1411)과 신유정(1353~1426). 신유정의 후손에서 조선 시대 인물이 많이 나왔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