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과 네 차례 강화 교섭을 오간 문신, 판장작감사, 송순의 아들
| 생몰 | 1204 ~ 1247 |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진천 송씨 |
송언기(宋彦琦, 1204~1247)는 고려 후기 진천 출신의 문신입니다. 디지털진천문화대전은 그의 생몰을 1204~1247로 적으며, 위키백과의 진천 송씨 문서는 1204~1246으로 적어 몰년이 한 해 차이 납니다. 『고려사』에 근거한 소개에서는 병이 들어 다시 사신으로 가지 못한 해에 대신들이 그를 평했다는 기록이 나오므로, 그 즈음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는 평장사를 지낸 송순이고, 증조부는 송인, 할아버지는 송원겸입니다.
어려서부터 글을 읽었고 고종 때 과거에 급제해 판장작감사에 올랐다고 합니다. 용인시민신문은 그가 전주현령으로 나가 토호들의 수탈을 막고 공평하게 다스려 백성의 존경을 받았다고 전합니다. 이후 감찰어사가 되어 지방을 순회하며 선정을 베풀었고, 흉년에는 우창을 열어 구휼미를 풀어 백성을 살려 '명어사'라는 칭찬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것은 몽골과의 교섭입니다. 디지털진천문화대전은 몽골군이 국경 지역에 들어왔을 때 수기(數騎)를 이끌고 가서 물러나게 했고, 이후 여러 차례 강화사로 파견되어 협상한 결과 7년 동안 국경이 평온했다고 전합니다. 용인시민신문은 전후 네 차례 몽골을 왕래했다고 적습니다. 1246년 조정이 다시 그를 강화사로 보내려 했으나 병으로 가지 못하자, 재상이 '그가 살아 있는 것은 나라의 복이고 죽는 것은 나라의 걱정'이라 평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전합니다.
아우로 전해지는 송문주(宋文胄)가 죽주산성에서 몽골군을 막아 낸 이야기와 함께, 송언기의 활약은 진천 송씨가 13세기 몽골 전쟁 때 문무 양면에서 나라에 기여한 가문으로 평가받는 근거가 됩니다. 다만 그가 송문주의 형이라는 설명은 진천 송씨 종중의 전승이며 학계와 지역에 이견이 있어 송문주 항목에서 병기했습니다. 『고려열조등과록』이 디지털진천문화대전의 출처로 제시됩니다.
디지털진천문화대전은 1247년, 위키백과는 1246년으로 적고, 용인시민신문은 1204~1247을 소개합니다. 이 글은 문화대전을 따르되 위키백과의 값을 병기합니다.
평장사를 지낸 송순입니다.
용인시민신문은 전후 네 차례 왕래했다고 전합니다.
판장작감사에 이르렀고 전주현령과 감찰어사도 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