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첨 宋國瞻

강직한 문신, 몽골과 강화 교섭에 참여하고 권신 최씨 정권에 맞선 형부상서

👤
생몰1250
시대고려 후기
본관진천 송씨

생애 약력

송국첨(宋國瞻, ?~1250)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진천 송씨입니다. 디지털부천문화대전은 진주(진천의 옛 이름) 출신이라 적고, 위키백과는 송인의 손자라 소개합니다. 용인시민신문은 송인의 아들 송원겸의 셋째 아들이자 송순의 아우라 전합니다. 『고려사』 열전은 그를 성품이 강직하고 악을 몹시 미워했으며 글재주가 뛰어났다고 기록합니다. 1212년(강종 원년) 과거에 급제해 직사관이 되었다고 위키백과는 전합니다.

1226년(고종 13) 금나라 장수 우가하가 침입하자 감찰어사로서 우군장이 되어 김희제, 손습경과 함께 군사 1만여 명을 이끌고 물리쳤다고 부천문화대전은 적습니다. 몽골군이 쳐들어온 1231년에는 회안공 왕정을 따라 몽골 원수 살리타(살례탑)와의 강화 교섭에 참여했는데, 말과 태도가 엄숙하고 바르다고 평가되었다고 합니다. 정언과 판비서성사를 거쳐 정방에 들어갔으나 권력자 최이(최우)에게 아부하지 않아 미움을 받았고, 박훤이 권세를 부리자 병을 핑계로 정방을 떠났습니다.

1243년에는 최우의 명으로 대사성으로서 간의 홍균과 함께 옛 부천 지역 안남의 지세를 살폈다고 부천문화대전은 전합니다. 바닷길을 내려던 수로 계획이었으나 중단되었고, 배수용인지 운하용인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합니다. 형부상서로 경상도 순문사에 나갔을 때는 송광사 승려로 있으면서 백성에게 막대한 폐해를 끼치던 만전(최우의 서자, 속명 최항)을 탄핵해 소환하게 했습니다. 다만 최우가 이후 그를 동경부유수로 좌천시킨 원인이 최항의 참소인지 최우 자신의 판단인지는 자료마다 설명이 다릅니다.

최항이 집권하자 그는 우산기상시를 거쳐 지서북면병마사로 밀려났고, 개경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울분 속에 1250년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고려사 열전은 권세 앞에서 타협하지 않은 곧은 관리였으나 권력자들의 시기 속에서 뜻을 펴지 못했다고 평가합니다. 이 글에서 '최항'은 무신 집권자 최우의 아들 최항이며 조선 초 최항(삭녕 최씨)과는 다른 인물입니다.

처인성과의 연결

용인시민신문은 송국첨이 강화를 맺었던 몽골 장수 살리타가 다시 침입했다가 처인성에서 승장 김윤후에게 사살되었다고 연결해 설명합니다. 처인성은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아곡리의 토성입니다.

송국첨 자주 묻는 질문

송국첨은 어떤 인물인가요?

강직한 성품으로 몽골과의 강화 교섭에 참여하고 최씨 정권에 맞선 고려의 형부상서입니다.

송국첨이 탄핵한 인물은 누구인가요?

송광사 승려로 폐해를 끼치던 최우의 서자 만전(최항)입니다.

송국첨은 언제 세상을 떠났나요?

1250년입니다.

🌳 이 인물을 시조 혹은 시작인물로 두고 내 족보월드 트리 시작하기 ⬆️ 내가 그린 족보트리에 이 인물을 최상위로 넣기
진천 송씨 가문. 우리 집안 진천 송씨 가계도를 온라인에서 무료로 그려보세요. 조상 확인은 제적등본 가이드 참고.

같은 진천 송씨 인물

송인진천 송씨 1세조, 문하평장사, 이자겸의 난 때 왕을 호위하다 피살송순고종 때 지공거를 맡고 평장사에 오른 문신, 송국첨의 형, 송언기의 아버지송언기몽골과 네 차례 강화 교섭을 오간 문신, 판장작감사, 송순의 아들송문주죽주산성에서 몽골군을 물리친 고려의 무장(본관은 자료에 따라 진천 송씨 전승과 의성설이 갈림)송찬중종부터 선조까지 4대에 걸쳐 벼슬한 문신, 청백리, 호 서교송영구폐모론에 반대해 파직된 문신, 호 표옹, 시호 충숙, 『표옹유고』의 저자
무료로 족보 시작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