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 宋贊

중종부터 선조까지 4대에 걸쳐 벼슬한 문신, 청백리, 호 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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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510 ~ 1601
시대조선 중기
본관진천 송씨

생애 약력

송찬(宋贊, 1510~1601)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진천이고 자는 치숙(治叔), 호는 서교(西郊)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인물정보에 따르면 사지(司紙) 세증(世曾)의 아들이며, 1537년(중종 32) 생원시에 합격하고 1540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했습니다. 급제 연도와 생몰년은 위키백과와 용인시민신문 등 여러 자료가 일치합니다. 92세에 가까운 장수를 누려 중종·인종·명종·선조의 네 임금을 섬겼다고 용인시민신문은 전합니다.

최종 관직에 대해서는 자료가 갈립니다. 위키백과는 1594년 우참찬을 거쳐 판돈녕부사와 판중추부사에 올랐다고 하고, 용인시민신문은 경기도 관찰사와 우찬성 등을 지냈다고 합니다. 가문 쪽 소개글은 경상도관찰사와 형조참판을 거쳐 정부 좌찬성에 올랐고, 90세에 기로사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며, 판돈녕부사·판중추부사를 지내다 92세에 별세했다고 적습니다. 어느 설이 정확한지는 『선조실록』 등 원전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송찬을 대표하는 평가는 청렴과 강직입니다. 용인시민신문은 그가 청렴하고 강직하게 공무를 처리해 청백리에 녹선되었고, 진천 송문에서 유일한 청백리라고 소개합니다. 다른 기사는 사후 숭정대부가 추서되었다고 전합니다. 고려 후기에 몽골 전쟁에서 공을 세운 선대와 달리, 송찬은 조선 중기 사림의 시대에 나라의 일을 맡아 이 집안이 문신 가문으로 이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위키백과 진천 송씨 문서는 이 가문이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42명을 냈다고 소개하는데(용인시민신문은 40명이라 적음), 송찬은 그 가운데 가장 이름이 알려진 인물의 한 사람입니다. 청백리는 조선에서 청렴한 관리로 뽑혀 공적으로 기려진 이들을 말하며, 지금도 후손과 관련 기관은 이를 가문의 자랑으로 이야기합니다. 묘소와 문집 여부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청백리란

청백리(淸白吏)는 조선 시대 청렴하고 공정한 관리로 뽑혀 이름이 올랐던 사람을 말합니다. 용인시민신문은 송찬이 진천 송문의 유일한 청백리라고 소개합니다.

송찬 자주 묻는 질문

송찬은 어떤 평가를 받았나요?

청렴하고 강직하여 청백리에 녹선되었다고 전합니다.

송찬은 언제 문과에 급제했나요?

1540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했습니다.

송찬의 호는 무엇인가요?

서교(西郊)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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