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을 표범에게서 구한 좌명공신, 여산부원군
| 생몰 | 1369 ~ 1447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여산 송씨 |
송거신(宋居信, 1369~1447)은 조선 전기의 무신이자 공신입니다. 본관은 여산이고, 아버지는 고려 말 전법판서를 지낸 송첨(宋詹)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그는 태종의 비 원경왕후와 인척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잠저 시절부터 두터운 대우를 받았습니다. 지역 언론은 그를 원경왕후 민씨의 당질로 소개합니다. 여산이 1436년 군으로 승격된 것도 원경왕후의 외가 고을이라는 이유였으니, 여산 송씨와 태종 왕실의 인연은 깊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사냥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별장을 거쳐 낭장으로 있을 때, 그는 이방원(뒤의 태종)을 따라 사냥에 나섰습니다. 그때 섣불리 건드린 표범이 이방원에게 달려들자, 송거신이 목숨을 걸고 표범을 때려잡아 그를 구했다고 합니다. 이 인연으로 태종이 즉위한 이듬해인 1401년(태종 1)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4등에 책록되었습니다.
그 뒤 군기소감을 거쳐 1402년 내자소경과 사복시부정이 되었고, 1403년 호룡순위사대호군, 1404년 상호군을 지냈습니다. 1406년에는 우군첨총제를 역임하고 여량군(礪良君)에 봉해졌습니다. 1410년에는 우군동지총제와 우군도총제를 지내며 군사 요직을 맡았습니다. 세종 때인 1426년에는 여산부원군(礪山府院君)으로 높여 봉해졌고, 1439년에는 왕으로부터 궤장(几杖)을 받아 원로 공신으로 예우받았습니다. 1447년(세종 29)에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충정(忠靖)입니다.
송거신은 무예와 충성으로 공신의 반열에 오른 인물로, 조선 건국 초기 여산 송씨가 왕실 가까이에서 자리를 굳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여량군', '여산부원군'처럼 본관 여산의 옛 이름이 그의 봉호에 그대로 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