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순국한 송백순의 아들, 원종공신, 한성부 우윤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진천 송씨 |
송립은 진천 송씨 전서공파의 후손으로 용인시민신문의 연재 「용인의 세거성씨」에 소개된 인물입니다. 한자 표기와 생몰년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전서공 송광우의 후손이 용인 원삼면 맹리·미평리에 자리를 잡았고, 그 14세손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송백순이 있습니다. 송립은 송백순의 아들로 전해집니다. 송백순은 이 공으로 호조판서로 증직되었다고 합니다.
기사에 따르면 송립은 열한 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종군했고, 아버지가 전사하자 포로로 잡혔다가 한밤에 도주해 아버지의 시신을 거두어 안장했습니다. 그 뒤 1616년(광해군 8) 무과에 급제했습니다. 인조반정(1623) 이듬해에 일어난 이괄의 난(1624) 때는 이괄의 휘하 장수였으나 관군에 협조해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고, 이 공으로 원종공신에 책록되었다고 합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에서는 남한산성 수비에 공을 세웠고 이후 한성부 우윤(종2품)에 올랐다고 합니다. 한성부 우윤은 오늘날의 서울시에 해당하는 한성부의 차관급 직책입니다. 전란이 이어지던 시기에 의병 집안에서 자란 소년이 임진왜란, 반정과 반란, 호란을 모두 겪으며 무인으로 성장한 이력이 한 사람의 생애에 겹쳐 있습니다.
송립과 아버지 송백순은 용인 처인구 원삼면 맹리 수정산 아래 진천 송씨 묘원에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서울 가리봉동과 독산동의 개발로 송백순과 송립의 묘를 이장해 묘단 가까이로 모셨고, 매년 음력 10월 8일 후손들이 시향을 올린다고 기사는 전합니다. 1998년에는 묘원 아래 재실 봉익재가 세워졌습니다. 이 글은 한 지역 기사에 의존하므로 직함과 연도를 다른 사료로 교차 확인하지 못했음을 밝혀 둡니다.
맹리 묘원에는 파조 송광우를 비롯해 아들 송기(경주부윤·부평부사·서흥부사), 송선, 송연종(1477년 문과, 병조정랑), 송천, 송백순이 모셔져 있다고 용인시민신문은 소개합니다. 미평리에는 현재 10여 호가 살지만 1950년대까지 30여 세대가 모여 사는 씨족촌이었다고 합니다.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수정산 아래 진천 송씨 묘원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전사한 송백순입니다.
이괄의 난 평정에 협조한 공으로 원종공신에 책록되었다고 전합니다.
남한산성 수비에 공을 세웠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