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합성」 이론으로 알려진 농학박사, 귀국해 한국 육종학과 채소·원예 종자 개량을 이끈 과학자

| 생몰 | 1898 ~ 1959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단양 우씨 |
우장춘(禹長春, 1898~1959)은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농생물학자·식물학자·원예육종학자로, 본관은 단양입니다. 아버지는 조선인 우범선이고 어머니는 일본인 사카이 나카입니다. 아버지는 훈련대 대대장으로 을미사변(1895)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뒤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1903년 고영근에게 암살되었고, 이 일은 우장춘의 일생에 무거운 짐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이후 우장춘은 잠시 보육원을 거쳐 도쿄 회운사라는 절에 맡겨졌다가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1916년 도쿄제국대학 농학실과에 입학했고, 졸업 뒤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일했습니다. 1936년 5월 도쿄제국대학에서 「종(種)의 합성」이라는 논문으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이 이론은 서로 다른 종 사이의 교잡으로 새로운 종이 생길 수 있음을 보인 것으로 현대 유전학 교과서에도 소개됩니다. 1945년 광복 뒤에도 한동안 일본에 머물렀으나, 1949년 한국농업과학연구소를 세운 이승만 정부의 요청을 받아 1950년 3월 8일 대한민국에 귀국했습니다. 가족은 일본에 남아 있었고, 당시 한일 관계가 좋지 않아 한동안 출국이 금지되는 등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귀국 뒤에는 채소 종자의 육종과 합성에 성공했고, 일본 재래 배추와 양배추를 교배해 한국 환경에 맞는 결구배추를 개발했으며, 강원도 감자의 바이러스 감염 문제를 개량하고 제주도의 감귤과 유채 재배를 권했습니다. 연구소에서 늘 고무신 차림이었다 해서 '고무신 박사'로도 불렸습니다. 씨 없는 수박은 기하라 히토시가 1947년에 처음 만들었고, 우장춘은 이를 한국에서 처음 시연해 널리 알려진 것이라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둘 만합니다. 1957년 부산시 문화상 과학부문상, 1959년 문화포장을 받았고, 1959년 8월 10일 위십이지장궤양으로 62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묘소는 경기도 수원 농촌진흥청 내 여기산에 있으며 2003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1936년 도쿄제국대학에서 「종의 합성」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서로 다른 종의 교잡으로 새로운 종이 생길 수 있다는 내용으로 현대 유전학 교과서에도 소개됩니다.
1950년 귀국해 한국농업과학연구소와 원예시험장을 이끌며 결구배추 개발, 강원도 감자 개량, 제주 감귤·유채 재배를 권하는 등 식량과 원예 기반을 닦는 데 기여했습니다.
1959년 문화포장을 받았고 사후 2003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부산에 우장춘기념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같은 단양 우씨의 학자 우하영이 조선 후기 농업론을 폈다면 우장춘은 근현대 농학의 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 수원 농촌진흥청 내 여기산에 묘소가 있으며, 2003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부산에는 우장춘기념관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우범선, 어머니는 사카이 나카이며, 배우자는 와타나베 고하루(한국명 우소춘)입니다. 동생으로 우홍춘이 전합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종의 합성」으로 농학박사가 된 뒤 1950년 귀국해 한국 육종학과 종자 개량을 이끈 농학자입니다.
씨 없는 수박은 기하라 히토시가 1947년에 만들었고, 우장춘은 한국에서 처음 시연해 알려졌다는 설명이 일반적입니다.
을미사변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우범선으로, 1903년 일본에서 암살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