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때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오른 문신, 시호 문민, 숙경공주 가계와 이어진 인물
| 생몰 | 1721 ~ 1774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원주 원씨 |
원인손(元仁孫, 1721~1774)은 조선 후기 영조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원주입니다. 자는 자정(子靜), 시호는 문민(文敏)입니다. 아버지는 병조판서와 이조판서를 지낸 원경하(元景夏)이고, 어머니는 신사철의 딸로 전합니다. 증조부는 효종의 사위가 된 원몽린이며 할아버지는 원명구입니다. 따라서 효종과 인선왕후의 딸 숙경공주의 가계와 이어진 인물로 소개됩니다. 동생으로 원의손이 있고, 부인은 남유상의 딸입니다. 시중공계로 원두표 집안(원몽린 가계)을 잇습니다.
벼슬길은 정언·지평 같은 언관직에서 시작해 전라도관찰사, 대사간, 부제학, 대사성, 대사헌, 공조참판, 동지경연사, 우승지, 이조참판 등을 두루 거쳤습니다. 이어 도승지, 병조판서, 우참찬, 형조판서, 지경연사, 홍문관제학, 예조판서, 좌빈객, 이조판서를 지냈고 마지막 관직은 우의정이었습니다. 대사간·대사헌·부제학처럼 간쟁과 학문을 맡은 자리와 도승지·판서처럼 왕명 출납과 행정을 맡은 자리를 모두 지냈다는 점에서 문치와 행정에 두루 밝았던 관료로 볼 수 있습니다.
투전 솜씨에 얽힌 일화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18세기 투전의 고수였다고 하며, 80장짜리 투전목을 섞어 뒤집어 놓아도 뒷면의 그림을 맞혔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아버지 원경하가 투전을 못 하게 하려고 그를 방에 가두자, 투전꾼들을 불러 병풍으로 가리고 판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이를 지켜본 아버지는 '하늘이 낸 재주'라며 탄식하고 다시는 금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일화의 사실 여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18세기 도박 풍속을 보여 주는 이야기로 자주 인용됩니다. 1774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 원경하는 병조판서·이조판서를 지냈고, 증조부 원몽린은 효종의 사위입니다. 시중공계 원두표 집안을 잇는 후손으로 소개됩니다.
정언·지평으로 출발해 전라도관찰사, 대사간, 부제학, 대사헌, 도승지, 병조판서,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지내고 우의정에 올랐습니다. 우의정에 오른 해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투전목의 뒷면을 맞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와, 아버지가 가두어도 판을 이어 가자 재주에 감탄해 금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동생 원의손이 있습니다. 아버지 원경하, 증조부 원몽린으로 이어지는 시중공계 후손입니다.
영조 때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오른 원주 원씨 문신으로 시호는 문민입니다.
병조판서와 이조판서를 지낸 원경하입니다.
증조부 원몽린이 효종의 딸 숙경공주의 부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