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반정의 공신, 효종·현종 때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오른 문신, 호 탄수, 시호 충익

| 생몰 | 1593 ~ 1664 |
| 시대 | 조선 중기~후기 |
| 본관 | 원주 원씨 |
원두표(元斗杓, 1593~1664)는 조선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시기의 문신이자 공신으로 본관은 원주이며 시중공계에 속합니다. 자는 자건(子建), 호는 탄수(灘叟)·탄옹(灘翁), 시호는 충익(忠翼)입니다. 5대조 원중륙, 고조부 원팽조(1473~1542, 충청도 병마절도사), 증조부 원송수, 할아버지 원호, 아버지 원유남(원계군)으로 이어지는 집안에서 났고, 박지계의 문인이었습니다. 부인은 삭녕 최씨(최동식의 딸)이며 아들로 원만석·원만리·원만춘 등과 서자 몇 명이 전합니다.
1623년 광해군의 정치에 반대한 서인 세력이 일으킨 인조반정에 아버지 원유남 등과 함께 참여해 성공시켰고, 그 공으로 정사공신 2등에 오르고 평원군에 책봉되었습니다. 뒤에 원평부원군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표기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이괄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전주부윤을 지냈고, 병자호란 때는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위했으며 이후 어영대장을 맡았습니다. 이어 전라도관찰사, 형조판서, 경상도관찰사, 호조판서 등을 거쳤습니다.
효종 때는 호조·공조판서, 좌참찬, 판의금부사, 형조판서, 개성유수, 병조판서를 지내고 우의정에 올랐으며, 현종 때 좌의정에 올라 내의원과 군기시의 도제조를 겸했습니다. 실록은 김자점의 옥사를 원두표가 꾸며 만든 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당쟁 속에서 나온 평가로 읽힙니다. 그를 중심으로 한 원당(原黨)은 산당에 밀려 몰락했고 후일 소론에 흡수되었다고 합니다. 1664년 세상을 떠났고 묘는 여주에 있으며 신도비는 사후 102년 만에 세워졌습니다. 손자 원몽린은 효종의 딸 숙경공주와 혼인했고, 그 가계를 이은 원인손 등이 우의정에 올랐습니다. 1981년 KBS 드라마 『대명』에도 등장합니다.
할아버지 원호는 임진왜란의 충장공, 아버지 원유남은 인조반정 참여자였으며 박지계의 문하에서 배웠습니다.
1623년 인조반정의 공으로 정사공신 2등에 올랐고 이괄의 난 진압으로 전주부윤을 지냈습니다. 이괄은 반정 공신이면서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병자호란 때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위하고 이후 어영대장을 지냈습니다.
효종 때 우의정, 현종 때 좌의정에 올랐습니다. 실록의 김자점 옥사 서술과 원당의 몰락·소론 흡수는 당시 당쟁의 한 단면입니다.
여주 북내면 장암리의 묘역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8호입니다. 손자 원몽린의 묘역은 대신면 상구리에 있습니다.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장암리에 있으며, 할아버지 원호의 묘와 함께 원호·원두표 묘역으로 불립니다. 2004년 5월 17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8호로 지정되었고, 석물로 묘비·상석·향로석·혼유석·문인석·망주석 등이 있습니다.
손자 원몽린은 숙경공주의 부마가 되었고, 그 가계를 이은 원인손은 영조 때 우의정에 올랐습니다. 후손에서 영조 계비 정순왕후와 순조 생모 유빈 박씨의 외가가 나왔다는 소개도 있습니다.
인조반정 공신으로 효종 때 우의정, 현종 때 좌의정에 오른 시중공계 문신이며 시호는 충익입니다.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장암리의 원호·원두표 묘역에 있으며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8호입니다.
임진왜란 때 순국한 충장공 원호가 할아버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