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의 딸 숙경공주의 남편인 부마 흥평위, 원두표의 손자

| 생몰 | 1648 ~ 1674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원주 원씨 |
원몽린(元夢鱗, 1648~1674)은 조선 후기의 부마로 본관은 원주이고 자는 용여(龍歟)입니다. 효종과 인선왕후의 여섯째 딸 숙경공주의 남편이며, 좌의정을 지낸 원두표의 손자이고 평안도관찰사 원만리의 아들입니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자료에 따라 원두표 또는 원두추(斗樞)로 달리 표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10세를 넘겨 의빈(儀賓, 공주의 배우자)으로 선발되었고, 1659년 숙경공주의 부마로서 흥평위(興平尉)에 봉해졌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효종이 승하해 혼인은 3년 뒤에야 이루어졌습니다.
첫 품계는 숭덕대부였고 1661년 광덕대부로 올랐습니다. 조선의 부마는 높은 품계와 대우를 받았지만 정치에는 거의 나서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이 가문이 왕실과 맺은 인연은 정치 권력보다 혼인 관계로 남았습니다. 1674년 아버지 원만리와 조모가 잇달아 세상을 떠나자 병을 얻어 27세의 나이로 요절했습니다. 1686년 장렬왕후의 환갑을 맞아 수록대부에 추증되었습니다.
숙경공주와의 사이에는 딸이 있었으나 일찍 죽어 후사가 없었고, 원명귀(元命龜)를 양자로 들였습니다. 위키백과는 손자로 원경하(元景夏)를 적고 있으며, 원경하의 아들이 우의정에 오른 원인손입니다. 이렇게 이어진 집안은 영조 때에도 조정에서 이름을 이었습니다. 그의 묘역(죽서 원몽린 묘역)은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상구리에 있으며 2004년 5월 6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0세를 넘겨 의빈에 선발되어 1659년 숙경공주의 부마로 흥평위에 봉해졌습니다. 효종의 승하로 혼인은 3년 뒤에 이루어졌습니다.
1674년 아버지와 조모의 잇단 상을 겪고 병을 얻어 27세에 별세했습니다. 1686년 장렬왕후의 환갑을 맞아 수록대부에 추증되었습니다.
딸이 일찍 죽어 양자 원명귀를 들였고, 손자 원경하, 증손자 원인손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상구리 산11-8에 있으며, 2004년 5월 6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딸은 일찍 죽었고 원명귀를 양자로 들였으며, 손자 원경하와 증손자 원인손으로 이어졌다고 전합니다.
효종의 딸 숙경공주와 혼인해 흥평위에 봉해진 원두표의 손자로, 27세에 요절했습니다.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상구리에 있으며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9호입니다.
양자 원명귀를 거쳐 손자 원경하, 증손자 우의정 원인손으로 이어졌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