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 李奎報

『동국이상국집』과 「동명왕편」을 남긴 고려의 문인·재상, 호는 백운거사, 시호 문순

강화도의 이규보 묘(묘소 사진이며 인물 사진이 아닙니다)
강화도의 이규보 묘(묘소 사진이며 인물 사진이 아닙니다) ·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생몰1168 ~ 1241
시대고려 중기
본관여주 이씨

생애 약력

이규보(1168~1241)는 고려 중기의 문인이자 재상으로, 초명은 인저(仁氐),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이고 시호는 문순(文順)입니다. 여주 이씨 문순공파가 그를 중시조로 받들며, 위키백과는 본관을 황려(黃驪)로 적고 가문을 여주 이씨와 연결해 소개합니다. 출생 연도는 자료에 따라 1168년과 1169년(양력 환산)으로 갈립니다. 아버지는 호부낭중을 지낸 이윤수입니다.

어려서부터 경사와 백가, 불교·도가 문헌을 두루 읽었다고 하며, 1189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190년 예부시에서 동진사로 뽑혔습니다. 곧바로 관직을 얻지 못해 개경 인근 천마산에 들어가 지내며 시를 지었고, 이 무렵 고구려 시조 주몽의 건국담을 노래한 서사시 「동명왕편」을 지었다고 소개됩니다. 1199년 동경(경주)의 반란 때 종군했고, 1207년 최충헌의 명으로 「모정기」를 지은 것을 계기로 관직의 길이 열렸습니다.

이후 우사간·좌사간을 거쳤고 1219년에는 지방관의 죄를 묵인했다는 이유로 계양도호부부사로 좌천되었으며, 1230년에는 잠시 위도에 귀양을 갔다가 다시 기용되었습니다. 집현전 대학사, 정당문학, 참지정사를 거쳐 1237년 문하시랑평장사로 물러났고, 몽골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짓는 일도 맡았습니다. 말년에는 강화도에서 지내다 1241년 9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거문고·술을 즐겨 스스로 삼혹호선생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동명왕편」과 문학관

「동명왕편」은 고구려 시조 동명왕(주몽)의 건국 과정을 노래한 서사시로,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정통 국가임을 내세우려는 뜻이 담겼다고 평가됩니다. 후대의 이승휴 『제왕운기』와 『용비어천가』 창작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그는 옛 구절을 빌려 쓰는 용사를 앞세운 문학관과 달리, 자기 목소리로 새로운 뜻을 담아야 한다는 신의론(新意論)을 주장했습니다. 술을 의인화한 가전 『국선생전』, 앞뒤로 읽어도 뜻이 통하는 회문시 「미인원」 같은 작품도 소개됩니다. 같은 시대의 문인으로는 이인로가 있습니다.

계양 좌천과 강화도의 말년

1219년 계양도호부부사로 좌천되었을 때 계양산 자오당과 관련한 글을 남겼고, 인천 부평구에는 이를 기념한 이규보로가 있다고 합니다. 1237년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강화도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지냈고, 최이가 문집 간행을 서둘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1241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전합니다. 강화도에는 묘소와 사당, 강화문학관 등이 있습니다.

묘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에 묘소가 있으며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소개됩니다.

후손

문순공파는 이규보의 세 아들 이함·이징·이제를 파조로 판서공파·사간공파·녹사공파로 나뉜다고 정리됩니다.

이규보 자주 묻는 질문

이규보의 본관은 어디인가요?

위키백과는 황려(黃驪)로 적고 있으며, 황려는 여주의 옛 이름이어서 여주 이씨 문순공파에서 중시조로 받듭니다.

이규보는 어떤 작품으로 알려졌나요?

고구려 건국 서사시 「동명왕편」, 술을 의인화한 『국선생전』, 시문집 『동국이상국집』이 대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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