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리지』를 지은 인문지리학자, 호는 청담·청화산인

| 생몰 | 1690 ~ 1756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여주 이씨 |
이중환(1690~1756)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여주, 자는 휘조(輝祖), 호는 청담(淸潭)·청화산인(靑華山人)이며 남인에 속했습니다. 성호 이익의 재종손이자 문인으로, 충청도 공주 일대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 이진휴는 충청도관찰사와 참판을 지냈습니다. 171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정원 가주서와 승문원 부정자·정자를 지냈고, 김천도찰방, 성균관 전적, 병조정랑 등을 거쳤습니다.
1722년 무렵 신임옥사와 관련한 목호룡의 고변 사건에 말을 빌려준 일로 얽혀 1725년 네 차례 국문을 받았습니다. 무죄를 주장했으나 증거가 부족해 섬으로 유배되었고, 1727년 석방되었다가 다시 유배령이 내려진 뒤 정치에 참여할 자격을 잃었습니다. 이후 관직을 단념하고 공주로 물러났으나 정착하지 못하고 전국을 떠돌았으며, 1753년 특명으로 통정대부에 올랐습니다.
약 30년간 전국을 답사하며 모은 기록으로 1751년경부터 『택리지』를 집필해 완성했습니다. 이익이 원고를 교열하고 서문과 발문을 써 주었다고 전합니다. 『택리지』는 살 곳을 고르는 기준으로 지리·생리·인심·산수를 들고 그중 생리와 인심을 특히 중시했으며, 당쟁이 인심을 해친다는 경고도 담았습니다.
복거총론은 살 곳을 가리는 네 기준인 지리·생리·인심·산수를 논합니다. 이중환은 이 가운데 경제적 조건인 생리와 풍속인 인심을 특히 중시했고, 교통이 편리하고 물자가 모여 교환이 활발한 곳을 살기 좋은 곳으로 보았습니다. 진안의 담배, 전주의 생강, 한산·임천의 모시처럼 지방 특산물과 시장에도 주목했다고 합니다.
『택리지』는 인문지리학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되며, 박지원·박제가 같은 북학파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다만 풍수지리적 사고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양반이라는 신분적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옵니다. 자료마다 사건 연도가 조금씩 달라 세부 연도는 원 사료 확인이 필요합니다.
황해도 금천군 설라산에 묻혔다고 전합니다.
이익의 재종손이자 문인이며, 이익이 『택리지』 원고를 교열하고 서문을 써 준 것으로 전합니다.
전국을 답사해 살기 좋은 곳의 조건을 논한 인문지리서입니다. 지리·생리·인심·산수를 기준으로 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