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행원 李行遠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고 인조 때 우의정에 오른 청백리

👤
생몰1592 ~ 1648
시대조선 후기
본관전의 이씨

생애 약력

이행원(李行遠, 1592~1648)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의(全義)입니다. 자는 사치(士致), 호는 서화(西華), 시호는 효정(孝貞)입니다. 청강 이제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자 이기준(李耆俊), 아버지는 현령 이중기(李重基), 어머니는 임색의 딸입니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기량이 넓어 많은 사람이 큰 그릇으로 지목했다고 합니다. 1610년(광해군 2)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7년 알성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정자로 기용되었고, 저작을 거쳐 박사에 올랐습니다. 1623년 인조반정 뒤에는 문장을 인정받아 주서가 되어 왕이 내리는 전교와 교유문을 거의 도맡아 지었고, 홍문관 교리로 발탁되었으며 암행어사로도 나가 민정을 살폈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 무렵 부수찬·수찬·정언·헌납·지평·이조좌랑·이조정랑·응교 등 청요직을 두루 거쳤고, 동부승지로 당상관에 오른 뒤 대사간·대사성·대사헌을 지냈습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호종해 남한산성에 들어갔고, 최명길 등의 화의론에 반대하며 척화를 주장했습니다. 화의가 이루어진 뒤에는 부빈객으로서 인질로 끌려가는 소현세자를 심양까지 모시고 가 고초를 함께 겪었습니다. 심양에서 돌아온 뒤 대사헌, 경기도관찰사, 도승지, 이조참판을 지내고 이조판서와 병조판서를 역임했습니다.

1647년(인조 25) 우의정에 올랐고, 이듬해 사신이 되어 청나라로 가던 길에 병을 얻어 평안도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림을 잘 그렸고, 지방관으로 나가서는 민심을 다독이고 세금을 크게 줄이는 등 치적이 많았으며, 평생을 가난하게 지내 청백리에 뽑혔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전합니다. 사촌 이행진(李行進)도 개성유수·경기도관찰사를 지내, 청강 이제신의 증손 대에 가문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 이 인물을 시조 혹은 시작인물로 두고 내 족보월드 트리 시작하기 ⬆️ 내가 그린 족보트리에 이 인물을 최상위로 넣기
전의 이씨 가문. 우리 집안 전의 이씨 가계도를 온라인에서 무료로 그려보세요. 조상 확인은 제적등본 가이드 참고.

같은 전의 이씨 인물

이정간조선 초기의 문신, 효행으로 이름난 인물이희승《국어대사전》을 편찬한 국어학자·시인이응노문자추상과 '군상' 연작으로 알려진 화가, 호 고암(顧菴)이천몽골군을 물리친 고려 무신, 전의 이씨 세 대파의 공통 선조이혼고려 충선왕 때 첨의정승, 문장공파 파조이탁선조 때 우의정·영의정을 지낸 청렴한 재상
무료로 족보 시작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