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과의 외교를 이끈 문하시중, 해동현인으로 불린 재상, 시호 문진
| 생몰 | 1201 ~ 1272 |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인천 이씨 |
이장용(李藏用, 1201~1272)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인천이며, 처음 이름은 인기(仁祺), 자는 현보(顯甫), 호는 낙헌(樂軒)입니다. 문하시중 이자연의 6대손입니다. 아버지는 추밀원사 이경(李儆), 할아버지는 판합문사 이응구, 증조부는 참지정사 정정공 이식이며, 고조부 이자효는 이자겸과 4촌 사이입니다. 이공수·이지저·이인로 등은 종6대조 이자상의 후손으로 그와는 먼 일족입니다.
1220년(고종 7) 문과에 급제해 서경사록으로 나갔다가 교서랑·직사관 등을 거쳐 국자감대사성과 승선이 되었습니다. 1253년 국자시를 주관해 98명을 선발했고, 1256년 추밀원부사, 1258년 정당문학, 1260년 참지정사로 승진했으며, 1262년 중서시랑평장사, 이듬해 수태부·판병부사에 올랐습니다. 최씨 무신정권의 마지막 집권자 최의가 그의 맏사위였고, 둘째 사위 박휘는 박전지의 아버지입니다.
그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것은 대몽 외교입니다. 1264년 몽골이 원종의 입조를 요구했을 때 다른 재상들이 모두 머뭇거리는 가운데 그만이 받아들이자고 굳게 주장했고, 자신도 원종을 따라 몽골에 갔습니다. 이때 영녕공 왕준 등을 입 다물게 하여 몽골 땅에서 '해동현인(海東賢人)'으로 칭송받았다고 합니다. 1267년 몽골이 일본 입조를 강요하자 사신을 설득해 이를 중단시켰고, 같은 해 신종·희종·강종 3대 실록 편찬을 시작했습니다. 1268년 문하시중에 올라 개경 환도를 주장하다 김준 일파의 반대에 부딪히자 여름에는 개경, 겨울에는 강화에 머무는 타협안을 냈습니다. 임연이 원종을 폐위할 때 이에 순응한 탓에 1271년 복위 후 파면되었고, 이듬해 72세로 세상을 떠나 유언에 따라 화장되었으며 1275년 문진(文眞)의 시호가 추증되었습니다. 『선가종파도』를 지었으나 전하지 않습니다.
몽골이 원종의 입조를 요구하자 재상들이 머뭇거리는 가운데 홀로 수용을 주장해 관철했습니다.
1267년 몽골 사신을 은밀히 설득해 일본 입조 강요를 중단시켰다고 합니다.
유언에 따라 화장되었다고 하며,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맏사위 최의(최씨 무신정권의 마지막 집권자), 둘째 사위 박휘(박전지의 아버지).
고려 원종 때 몽골과의 외교를 이끌고 문하시중에 오른 인천 이씨 재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