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정씨(河東 鄭氏) — 조선 초 훈민정음 편찬에 참여한 정인지를 배출한 가문으로 전해집니다.

조선 초 훈민정음 편찬에 참여한 정인지를 배출한 가문으로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하동 정씨 인구는 약 187,152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정씨라도 본관(하동)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하동 정씨(河東 鄭氏)는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을 본관으로 합니다. 『조선씨족통보』는 하동 정씨를 여섯 계통으로 나누었지만, 오늘날 전하는 하동 정씨는 본관이 같으면서 시조가 서로 다른 세 계통입니다.
세 계통은 시조가 다르므로 족보와 항렬도 저마다 따로 씁니다.
고려 무신정권기에 하동 정씨는 최씨 정권을 받친 유력 가문의 하나였습니다. 정숙첨(鄭叔瞻)은 집권자 최우의 장인이었고, 그 아들 정안(鄭晏)은 남해에 물러나 있을 때 사재를 들여 팔만대장경 간행을 도왔습니다. 고려 말 남해 관음포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경렬공 정지(鄭地, 1347~1391)는 하동 정씨 문중에서 경렬공파의 파조로 받듭니다. 다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그의 본관이 나주로 적혀 있어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조선에 들어와 밀직공계에서는 정인지가 훈민정음 창제와 『고려사』 편찬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세조 때 영의정에 올라 하동부원군에 봉해졌고, 아들 정현조는 세조의 딸 의숙공주와 혼인했습니다. 같은 계통의 일두 정여창은 김종직 문하에서 공부한 사림의 학자로, 동방오현의 한 사람으로 문묘에 종사되었습니다. 좌정승공계에서는 『농사직설』 편찬에 참여한 정초와 영응대군의 사부였던 정수충이 이름을 남겼습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휘하에서 싸우다 부산포해전에서 순절한 정운, 정묘호란 때 용골산성을 지킨 의병장 정봉수, 『동국지도』를 만든 지리학자 정상기도 하동 정씨입니다. 중종의 아들 덕흥대원군의 부인으로 선조를 낳은 하동부대부인도 이 가문 출신입니다. 조선 시대 하동 정씨의 과거 급제자는 300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됩니다.
근현대에는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이 지예부사공파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일가가 여러 기업을 이끌었습니다. 세거지는 전남 화순 화순읍 광덕리, 보성 겸백면 도안리·율어면 고죽리, 나주 노안면 금안리 등 호남에 많습니다. 충북 영동 학산면 지내리·괴산 감물면 광전리, 경기 여주 흥천면 상백리 등지에도 세거지가 있습니다.
계파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밀직공파(국룡계)는 신라 말 하동의 호족으로 평장사에 올랐다고 전하는 정도정(鄭道正)을 시조로 하나,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 때 문하시중 정석숭(鄭碩崇)을 1세로 삼습니다. 파 이름은 5세로 밀직부사를 지낸 정국룡(鄭國龍)에서 나왔으며, 하동 정씨의 다수를 차지합니다.
정국룡의 손자 정흥인의 아들이 세조 때 영의정에 오른 정인지(鄭麟趾)이고, 성리학자 정여창(鄭汝昌)도 이 계통입니다. 고려 말 왜구를 격파한 정지(鄭地)의 후손은 경렬공파를 이룹니다.
좌정승공파(정승공파, 응계)는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해 도첨의 좌정승을 지냈다고 전하는 정응(鄭膺)을 시조로 하며, 하동 정씨의 약 3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한림공파·별제공파·주부공파 등 여러 분파로 나뉩니다.
6세 정희(鄭熙)는 정몽주의 제자로 두문동 72현에 꼽히며, 7세 정초(鄭招)는 대제학을 지내고 『농사직설』 편찬에 참여했습니다. 8세 정수충(鄭守忠)은 영응대군의 사부로 좌찬성에 올랐습니다.
지예부사공파(손위계)는 정손위(鄭遜位)를 시조로 합니다. 정손위는 고려 숙종부터 명종까지 다섯 임금을 섬기며 정헌대부 지예부사, 응양대장군(鷹揚大將軍), 문하시중을 지내고 하동백(河東伯)에 봉해졌다고 전합니다.
현대 인물로는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鄭周永)이 이 파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성공파는 세조 때 영의정에 올라 하동부원군에 봉해진 학역재 정인지(시호 문성)의 후손으로 이루어진 갈래입니다. 밀직공파(도정계)에 속하며, 세계일보 연재 '뿌리를 찾아서'는 정도정 후손의 파로 산원공파·흥의공파와 함께 문성공파를 꼽습니다.
정인지의 아들 정현조는 세조의 딸 의숙공주와 혼인해 하성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영조 때 백리척을 써서 『동국지도』를 만든 정상기도 정인지의 후손입니다. 정인지의 묘는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외령리에 있습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정도정(밀직공파에서 받드는 시조), 정초(대제학·농사직설 편찬), 정수충(영응대군의 사부·좌찬성), 정인지(조선 문신), 정현조(세조의 부마·하성부원군), 정여창(조선 성리학자), 정운(임진왜란 부산포해전 순절), 정봉수(정묘호란 용골산성 의병장), 정상기(동국지도 제작), 하동부대부인(덕흥대원군의 부인·선조의 생모), 정이형(독립운동가), 정주영(현대그룹 창업주)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하동 정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결정 명단·《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에 오른 하동 정씨 계열 인물입니다.
하동 정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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