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관수 白寬洙

독립운동가·언론인·정치인 (2·8 독립선언 낭독, 호 근촌)

백관수 선생
백관수 선생 · Public Domain (동아일보 게재 사진, Wikimedia Commons)
생몰1889 ~ 1951
시대근현대
본관수원 백씨

생애 약력

백관수(白寬洙, 1889~1951)는 전북 고창군 성내면 생근리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언론인·정치인으로 호는 근촌(芹村)입니다. 한학을 공부했고 1915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했으며, 일본 유학 중이던 1919년 2·8 독립선언을 주도하고 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이 일로 구속되어 1년간 복역했습니다.

1924년 귀국해 조선일보에 입사했고, 1937년 동아일보 사장이 되었습니다. 1940년 동아일보 강제 폐간 때 폐간계에 날인하기를 거부해 구금되었고, 이후 고향에 은둔하며 총독부의 친일 단체 참여와 창씨개명을 거부했다고 전합니다. 친일인명사전 논란 때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행위자가 아님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광복 뒤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했고, 1948년 제헌국회의원(고창 을)에 당선되어 헌법기초위원을 맡았습니다. 1950년 3월 서상일과 함께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발의했으나 2표 차로 부결되었고, 같은 해 한국전쟁 때 서울에서 납북되었습니다. 사망일은 1951년 10월 25일로 알려지나 일부 서술은 1961년으로 적고 있어 자료마다 다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그를 수원 백씨로 소개하며, 백인걸의 후손으로 보는 서술도 있습니다.

2·8 독립선언

1919년 2월 8일 도쿄에서 조선 유학생들이 발표한 독립선언으로, 3·1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평가됩니다. 그는 이를 주도하고 낭독했습니다.

언론과 헌정

동아일보 사장으로 일제 말 폐간을 맞았고, 해방 뒤에는 헌법 기초에 참여했습니다. 같은 시기 활동한 독립운동가 백정기·백용성과 함께 수원 백씨의 독립운동 계보로 기려집니다.

자료 간 차이

사망 연도(1951/1961)와 서훈 기록은 자료마다 다르며, 이 글은 1951년과 '독립유공자로 분류된다'는 표현을 따랐습니다. 후손 관계는 문중 전승이므로 족보로 확인하세요.

묘소

납북되어 묘소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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