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 독립운동가 (3·1운동 민족대표 33인)

| 생몰 | 1864 ~ 1940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수원 백씨 |
백용성(白龍城, 1864~1940)은 불교 승려이자 독립운동가로,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입니다. 전북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에서 태어나 1879년 16세에 합천 가야산 해인사에서 출가했고, 선종과 교종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불교계 대표는 한용운과 그 두 사람뿐이었으며, 태극기를 흔들 것을 제안했다고 전합니다. 이 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출옥 뒤에는 왜색 불교를 몰아내는 운동을 펼치고, 서울 종로에 대각사를 세워 활동했으며, 1929년 경남 함양에 자급형 농장 화과원(華果園)을 열었습니다.
1921년 한국 불교 최초의 한글판 금강경을 펴냈고, 1928년 '조선글 화엄경'을 펴내 당시 언론으로부터 세종대왕도 못 한 일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수심론』, 『귀원정종』, 『용성선사어록』 등을 남겼고, 1940년 2월 24일 열반을 예고하고 제자들에게 유훈 10가지를 남기고 입적했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1990년 은관 문화훈장이 추서되었습니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불교계 인사로, 서명한 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습니다. 출옥한 뒤에도 활동을 접지 않고 불교 개혁에 힘썼습니다.
한문 불경을 한글로 옮겨 대중이 읽게 한 일은 한국 불교사에 남는 업적으로 평가됩니다. 같은 수원 백씨 독립운동가로 백정기·백관수가 있습니다.
한국어 위키백과 본문에는 본관이 명시되어 있지 않고 분류에 '수원 백씨'로 올라 있어, 문중 확인이 필요합니다. 입적 장소와 묘소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입적 장소와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대각사가 그의 활동 중심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