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 만주방면 · 만주방면

| 생몰 | 1896 ~ 1983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진주 강씨 |
강명규(姜明奎)는 1896년 황해도 봉산군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위석(渭石)이다. 경성사립오성학교를 거쳐 보성전문학교 상과 재학 중 3·1운동에 참가하였고, 이후 대일 무력투쟁 계획이 발각되자 상해로 망명하였다.
1921년부터 2년간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2년에는 나석주 등과 함께 한단육군군관강습소와 바오딩육군공병단훈련소에서 군사교육을 받았다.
이후 만주로 이동하여 1924년 통의부 군사부 의용군사과장 겸 지도부장, 1925년 정의부 중앙심판위원, 1929년 신민부 중앙위원을 지내며 독립군 조직 재편과 무장투쟁에 힘썼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여러 전투에 참여하였고, 1939년 구국동지회 회장, 1945년 광한단 부단장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에는 한국독립당 중앙감찰위원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조사원 등을 지냈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