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강씨(晉州 姜氏) — 고구려 명장 강이식을 시조로 삼는다고 전해지는 강씨의 대표 본관입니다.
고구려 명장 강이식을 시조로 삼는다고 전해지는 강씨의 대표 본관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진주 강씨 인구는 약 968,109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강씨라도 본관(진주)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박사공파(대종파), 은열공파, 인헌공파, 수은공파, 소감공파, 시중공파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강이식(전승상의 시조·고구려 장수), 강민첨(고려 명장), 강항(조선 학자·수은), 강희안·강희맹(조선 문신 형제), 강세황(조선 문인화가)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진주 강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결정 명단·《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에 오른 진주 강씨 계열 인물입니다.
진주 강씨는 고구려 영양왕 때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를 지냈다고 전하는 강이식(姜以式) 장군을 시조로 삼습니다. 다만 강이식은 《삼국사기》 등 정사(正史)에는 보이지 않고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와 《진주강씨 족보》에서만 전하는 인물로, 실존 여부에는 논란이 있습니다. 진주시 상봉동의 봉산사(鳳山祠)에 그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강씨가 진주에 세거하게 된 것은, 고구려 멸망 뒤 강진(姜縉)이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태중대부 판내의령(太中大夫判內議令)을 지내고 진양후(晉陽侯)에 봉해진 데서 비롯한다고 전합니다. 이때부터 본관을 진주(晉州)로 삼게 되었습니다.
진주 강씨 족보는 그 뿌리를 중국 주나라 건국공신 강태공(姜太公), 나아가 삼황(三皇)의 하나인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에까지 거슬러 올립니다. 전승에 따르면 신농씨가 강수(姜水)에서 자라 그 지명을 따 강(姜)을 성으로 삼았고, 이 강성(姜姓)이 뒷날 여러 갈래로 뻗어 한국의 진주 강씨는 그중 은(殷)나라 계통에 뿌리를 둔다고 합니다. 진주 강씨 문중은 오늘날에도 중국 산둥성 쯔보시 임치구에서 강태공 후손들과 함께 이른바 '제나라 문화축제'에 참여하는데, 이 자리에는 강씨에서 갈라졌다고 전하는 고(高)·노(盧)·여(呂)·정(丁)·구(丘) 씨 등도 함께한다고 합니다.
위 내용은 족보와 문중 전승으로, 문헌 사료와의 교차 검증은 어렵습니다.
진주 강씨는 크게 여러 파로 나뉩니다.
계파 구분과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차이가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보유하신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진주 강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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