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강씨 족보·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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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강씨(晉州 姜氏) — 고구려 명장 강이식을 시조로 삼는다고 전해지는 강씨의 대표 본관입니다.

인구 — 약 968,109명 (2015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진주 남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시조 사당과 진주성 일대를 그린 수묵담채풍 그림
AI로 그린 상상도 — 진주 남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시조 사당과 진주성 일대를 그린 수묵담채풍 그림

진주 강씨란

고구려 명장 강이식을 시조로 삼는다고 전해지는 강씨의 대표 본관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진주 강씨 인구는 약 968,109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강씨라도 본관(진주)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진주 강씨의 뿌리와 역사

시조와 본관의 유래

진주 강씨(晉州 姜氏)는 고구려 영양왕 때 병마원수를 지냈다고 전하는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받드는 성씨로, 진주의 옛 이름을 따 진양 강씨(晉陽 姜氏)라고도 부릅니다. 2015년 인구조사에서는 '진주 강씨' 968,109명과 '진양 강씨' 193,217명을 합해 116만여 명이 집계되어, 강(姜)씨 가운데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합니다. 본관 진주는 지금의 경상남도 진주시입니다.

본관을 진주로 삼게 된 계기는 일반적으로 강진(姜縉)이 진양후(晉陽侯)에 봉해진 데서 찾지만, 강이식의 8세손 강우덕(姜友德)이 고구려 멸망 뒤 진주로 옮겨 살았기 때문이라는 설, 고려 말 강회백(姜淮伯)이 진양에 유배된 일을 계기로 진주를 세거지로 삼았다는 설도 함께 전합니다. 금천·안동·배천·해미 등 다른 강씨 본관도 대체로 진주 강씨에서 갈라진 것으로 봅니다.

가문의 흐름

진주 강씨는 고려 때 이미 무장과 문신을 고루 배출했습니다. 현종 때 거란을 물리친 강민첨이 은열공파를, 귀주대첩의 강감찬의 아버지 강궁진이 인헌공파를 이루었고, 고려 원종 때 국자박사로 통신사 서상관이 되어 일본에 다녀온 강계용(姜啓庸)이 박사공파를, 그의 아우들이 소감공파와 시중공파를 열었습니다.

가장 번성한 박사공파는 강계용의 손자 강사첨이 어사를 지내 어사공파라고도 부르며, 4세에서 대장군공(강창부)파와 진원부원군공(강창귀)파로 나뉩니다. 진원부원군 계통에서 고려 말 형제인 강회백과 강회중이 나와 각각 통정공파와 통계공파의 파조가 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 통정공파에서는 세종의 후궁 영빈 강씨의 아버지 강석덕, 그의 아들 강희안·강희맹 형제, 세조 때 영의정 강맹경, 연산군 때 우의정 강구손이 나왔고, 통계공파에서는 선조 때 우의정 강사상과 그의 아들 강신·강인 형제, 광해군 때 명나라 원군을 이끌었던 강홍립, 인조 때 화포술을 개발한 강홍중 등이 나왔습니다. 강인의 후손은 고종 때 강준흠·강시영·강문형 등 판서급 인물을 잇달아 배출했습니다.

은열공파에서는 시·서·화에 능했던 강세황이 나왔고, 그의 후손 가운데 혼천시계와 휴대용 해시계(앙부일구)를 만든 인물들이 있습니다. 인헌공파에서는 인조 때 우의정 강석기와 그의 딸인 소현세자빈(민회빈 강씨)이 나왔으나, 세자빈이 사사되면서 집안이 큰 화를 입었습니다. 근대에는 조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를 비롯해 많은 독립유공자가 이 가문에서 나왔습니다.

주요 인물

세거지와 유적

진주시 상봉동의 봉산사(鳳山祠)는 시조 강이식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해마다 음력 3월 10일에 제향을 올립니다. 진주 옥봉동의 은렬사는 강민첨의 탄생지로 전하는 곳으로 유허비와 사당이 있고, 충남 예산군 대술면 이치리에는 강민첨의 묘소와 신도비·재실이 있습니다. 서울 관악구의 낙성대는 강감찬이 태어날 때 별이 떨어졌다는 전설이 깃든 출생지로, 사당 안국사가 함께 있습니다.

경기 시흥시 하중동 일대에는 강희맹을 비롯한 통정공파 선대의 묘와 재실 연성재, 강희맹 신도비가 있으며, 인근 관곡지는 강희맹이 명나라에서 연꽃씨를 들여와 심은 곳으로 전합니다. 제주도에는 1418년 양녕대군 폐위에 반대하다 유배된 강윤희, 1436년 들어온 강인덕, 1506년 갑자사화의 화를 피해 들어온 강철의 후손이 정착해 각각 큰 갈래를 이루었습니다. 이 밖에 진주·남해, 안동·영주, 이천, 순창·남원 등지와 황해도·평안북도 정주·함경남도 북청 등 북녘에도 집성촌이 있었습니다.

박사공파 항렬표

아래는 진주 강씨 공목공(恭穆公)파종중이 운영하는 인터넷 전자족보에 실린 박사공파 항렬자로, 박사공 강계용을 1세로 헤아린 세수입니다. 같은 세대라도 진원부원군공(강창귀)파와 대장군공(강창부)파의 돌림자가 다르며, 진원부원군공파의 24~27세 항렬자 가운데 일부는 주로 통정공파, 일부는 통계공파에서 나누어 씁니다. ○는 이름의 나머지 한 글자 자리입니다.

세진원부원군공(휘 창귀)파대장군공(휘 창부)파
23세永(영)○ · 漢(한)○ · 源(원)○燦(찬)○ · 炳(병)○
24세○秀(수) · ○元(원) · ○馨(형)○基(기) · ○奎(규)
25세大(대)○ · 熙(희)○ · 昌(창)○鎭(진)○ · 鐘(종)○
26세○遠(원) · ○中(중) · ○信(신) · ○基(기)○源(원) · ○漢(한)
27세聲(성)○ · 鎬(호)○ · 錫(석)○東(동)○ · 相(상)○
28세○求(구) · ○澤(택) · ○淳(순)○煥(환) · ○然(연)
29세模(모)○ · 秉(병)○ · 來(래)○圭(규)○ · 載(재)○
30세○默(묵) · ○顯(현) · ○焌(준)○鎬(호) · ○鉉(현)
31세培(배)○ · 敎(교)○ · 應(응)○洪(홍)○ · 泰(태)○
32세○鍊(련) · ○鐘(종) · ○鐸(탁)○植(식) · ○柱(주)
33세雨(우)○ · 湜(식)○ · 浚(준)○炫(현)○
34세○榮(영) · ○樺(화) · ○穆(목)○均(균) · ○墉(용)
35세熏(훈)○ · 炯(형)○ · 煇(휘)○銖(수)○ · 鉦(정)○
36세○垠(은) · ○喆(철) · ○奎(규)○洛(락) · ○汶(문)
37세鉀(갑)○ · 鈺(옥)○ · 鎭(진)○根(근)○ · 杬(원)○
38세○澈(철) · ○沅(원) · ○濟(제)○炅(경) · ○焃(혁)

항렬은 파·지역 문중에 따라 다르게 쓰는 경우가 있으니, 정확한 항렬자는 소속 문중이나 족보에서 다시 확인하세요.

계파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주요 파(派)

박사공파, 소감공파, 시중공파, 은열공파, 인헌공파, 통정공파, 통계공파

박사공파 (博士公派)

박사공파는 고려 원종 때 국자박사(國子博士)로 통신사 서상관이 되어 일본에 다녀온 강계용(姜啓庸)을 중시조로 하는 진주 강씨의 대종파입니다. 손자 강사첨(姜師瞻)이 어사를 지내 어사공파(御史公派)라고도 합니다.

고려 말 대사헌을 지내고 조선 개국 후 동북면도순문사에 오른 강회백(姜淮伯)의 통정공파에서 강희안·강희맹 형제와 영의정 강맹경, 우의정 강구손이 나왔고, 강회중(姜淮仲)의 통계공파에서 우의정 강사상과 강홍립 등이 나왔습니다. 정유재란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던 수은 강항(姜沆)도 강희맹의 5대손으로 이 계통입니다.

소감공파 (少監公派)

소감공파는 고려 때 사도소감(司徒少監)을 지낸 강위용(姜渭庸)을 파조로 합니다. 강위용은 박사공파 중시조 강계용의 아우로 전해집니다.

후대에 강태(姜泰)의 후손이 대상공파(大相公派)를, 강건(姜健)의 후손이 태사공파(太師公派)를 이루는 등 하위 파로 나뉘었습니다.

시중공파 (侍中公派)

시중공파는 강원용(姜遠庸)을 중시조로 하는 파이며, 관서대장군(關西大將軍) 강원로(姜元老)를 파조로 삼아 관서공파(關西公派) 또는 관서대장군파라고도 부릅니다.

고려 말 정몽주와 교유하다가 조선 개국 후 벼슬에서 물러난 강윤보, 세조 때 이시애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운 강행 등이 이 파 인물로 꼽힙니다.

은열공파 (殷烈公派)

은열공파는 고려 현종 때 강감찬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거란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운 은열공 강민첨(姜民瞻)을 중시조로 하는 파입니다.

조선 후기 문인화가이자 평론가인 표암 강세황(姜世晃)이 이 파의 후손으로 전해지며, 앙부일구·혼천시계 제작에 관여한 인물들도 이 파에서 나온 것으로 소개됩니다.

인헌공파 (仁憲公派)

인헌공파는 고려 개국 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오른 강궁진(姜弓珍)을 파조로 합니다. 그의 아들이 귀주대첩을 이끈 인헌공 강감찬(姜邯贊)이며, 파 이름도 강감찬의 시호에서 왔습니다.

강감찬의 출생지 이름을 따 이 계통을 금천(衿川) 강씨라고도 부릅니다. 우의정을 지내고 딸이 소현세자빈(민회빈 강씨)이 된 강석기(姜碩期), 독립운동가 강우규(姜宇奎)가 이 파 인물로 소개됩니다.

통정공파 (通亭公派)

통정공파는 박사공파 진원부원군 계통에서 갈라진 파로, 고려 말 대사헌을 지내고 조선 개국 뒤 동북면도순문사에 오른 통정(通亭) 강회백(姜淮伯, 1357~1402)을 파조로 합니다.

아들 강석덕은 세종의 후궁 영빈 강씨의 아버지이며, 손자 강희안·강희맹 형제와 세조 때 영의정 강맹경, 연산군 때 우의정 강구손이 이 파에서 나왔습니다. 경기 시흥에 강희맹 등 선대의 묘와 재실 연성재가 있습니다.

통계공파 (通溪公派)

통계공파는 강회백의 아우 통계(通溪) 강회중(姜淮仲)을 파조로 하는 박사공파의 갈래입니다.

선조 때 우의정 강사상, 평난공신으로 판서를 두루 지낸 진흥군 강신과 호성공신 진창군 강인 형제, 광해군 때 명나라 원군을 이끈 강홍립, 인조 때 화포술을 개발한 강홍중이 이 파 인물로 꼽히며, 강인의 후손은 고종 때 여러 판서를 배출했습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강이식(전승상의 시조·고구려 장수), 강민첨(고려 명장·은열공), 강감찬(귀주대첩의 명장·인헌공), 강계용(박사공파 중시조), 강회백(통정공파 파조·고려 말 대사헌), 강맹경(세조 때 영의정), 강희안·강희맹(조선 문신 형제), 강구손(연산군 때 우의정), 강사상(선조 때 우의정), 강홍립(광해군 때 원정군 도원수), 강항(조선 학자·수은), 강석기(인조 때 우의정), 강세황(조선 문인화가), 강우규(독립운동가)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진주 강씨 독립유공자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진주 강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강우규 (1855~1920)독립유공자 · 의열투쟁 · 대한민국장(1962)강봉환 (1867~1961)독립유공자 · 국내항일 · 국내항일강문진 (1869~1929)독립유공자 · 국내항일 · 국내항일강문주 (1879~1945)독립유공자 · 만주방면 · 만주방면강달주 (1880~1960)독립유공자 · 의병 ·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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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강씨 친일 인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결정 명단·《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에 오른 진주 강씨 계열 인물입니다.

강대련 (1875~1942)종교 (친일반민족행위자)강동희 (1886~1964)정치·귀족 (친일반민족행위자)강병일 (1892~1919)군인·헌병 (친일반민족행위자)

시조 강이식과 진주 정착

진주 강씨는 고구려 영양왕 때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를 지냈다고 전하는 강이식(姜以式) 장군을 시조로 삼습니다. 다만 강이식은 《삼국사기》 등 정사(正史)에는 보이지 않고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와 《진주강씨 족보》에서만 전하는 인물로, 실존 여부에는 논란이 있습니다. 진주시 상봉동의 봉산사(鳳山祠)에 그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강씨가 진주에 세거하게 된 것은, 고구려 멸망 뒤 강진(姜縉)이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태중대부 판내의령(太中大夫判內議令)을 지내고 진양후(晉陽侯)에 봉해진 데서 비롯한다고 전합니다. 이때부터 본관을 진주(晉州)로 삼게 되었습니다.

강태공과 염제신농까지 — 족보 전승

진주 강씨 족보는 그 뿌리를 중국 주나라 건국공신 강태공(姜太公), 나아가 삼황(三皇)의 하나인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에까지 거슬러 올립니다. 전승에 따르면 신농씨가 강수(姜水)에서 자라 그 지명을 따 강(姜)을 성으로 삼았고, 이 강성(姜姓)이 뒷날 여러 갈래로 뻗어 한국의 진주 강씨는 그중 은(殷)나라 계통에 뿌리를 둔다고 합니다. 진주 강씨 문중은 오늘날에도 중국 산둥성 쯔보시 임치구에서 강태공 후손들과 함께 이른바 '제나라 문화축제'에 참여하는데, 이 자리에는 강씨에서 갈라졌다고 전하는 고(高)·노(盧)·여(呂)·정(丁)·구(丘) 씨 등도 함께한다고 합니다.

위 내용은 족보와 문중 전승으로, 문헌 사료와의 교차 검증은 어렵습니다.

주요 분파

진주 강씨는 크게 여러 파로 나뉩니다.

계파 구분과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차이가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보유하신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참고 영상

한국의 성씨 1회 진주 강씨, 인류의 뿌리 성씨

우리 진주 강씨 가계도, 이렇게 만드세요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진주)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진주 강씨 족보·계보도를 온라인으로. 종이에 그리다 지우지 말고, 무료로 시작해 계보를 세대별로 자동 정리하세요.

🌳 진주 강씨 시조 계보도

진주 강씨 시조 계보도강이식 → 강회백 → 강희안·강희맹 · 강민첨 → 강세황
공개된 사료로 확인되는 진주 강씨 윗대 계보를 실제 족보트리로 그렸습니다. 인물을 누르면 그 분부터 위쪽 계보를 내 족보 맨 위로 가져올 수 있어요(요금제 인물 수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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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강씨 종친회

진주 강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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