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식 姜以式

진주 강씨의 시조로 전하는 고구려의 장수 (실존 여부에는 논란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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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고구려 (전승)
본관진주 강씨

생애 약력

강이식(姜以式)은 진주 강씨의 시조로 전해지는 고구려의 장수이다. 다만 그의 행적은 정사(正史)에서 확인되지 않으며, 신채호의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와 조선 후기에 편찬된 《진주강씨 족보》 등을 통해서만 전한다.

족보 전승에 따르면 550년 중국 남조 광동(廣東)에서 시랑 강철상의 아들로 태어나, 무예와 병법에 뛰어나 24세에 동명대회(東明大會)에서 장원하였다고 한다. 요동 서부 총관부의 총관으로서 을지문덕과 함께 국경을 지켰으며, 수 문제가 무례한 국서를 보내오자 "이런 국서는 붓이 아니라 칼로 답해야 한다"며 강경 대응을 주장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후 수나라의 침공을 임유관(臨渝關) 일대에서 크게 물리친 공으로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에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를 비롯해 당대에 가까운 정사에는 강이식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고, 신채호가 인용했다는 《서곽잡록》·《대동운해》도 현존하지 않는다. 또한 그가 지냈다는 '병마도원수'는 중국에서도 고구려 멸망 이후에야 등장하고 한국에서는 고려 때 도입된 관직명이어서, 고구려 당대의 실존 인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오늘날 학계에서는 강이식을 조선 후기 숭조(崇祖) 사업 속에서 형상화된 전승적 인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조선상고사》는 그의 무덤이 중국 심양 원수림역(元帥林驛) 앞에 있으며 '병마원수강공지총(兵馬元帥姜公之塚)'이라 새긴 비석이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확인하기 어렵다. 현재 진주시 상봉동의 봉산사(鳳山祠)에 그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진주 강씨 문중에서 시조로 기린다.

후손

후손 강진(姜縉)이 진양후(晉陽侯)에 봉해지며 본관을 진주로 삼았다고 전하며, 오늘날 진주 강씨가 그 계통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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