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서·화와 문장으로 이름 높았던 조선 초기 문신 형제
| 생몰 | 1419 ~ 1483 |
| 시대 | 조선 |
| 본관 | 진주 강씨 |
강희안(1419~1464)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화가로 집현전 직제학을 지냈다. 훈민정음 해석과 《용비어천가》 주석에 참여하였으며, 시·글씨·그림의 삼절(三絶)로 이름이 높았다. 어머니가 세도가 심온의 딸이었던 인연으로 세종의 후궁이 된 영빈 강씨가 그의 누이이며, 이 외척 관계로 세종과는 이모부-조카 사이, 문종·세조와는 이종사촌 간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 《양화소록》을 저술하였고, 대표작으로 《고사관수도》가 전하며, 말년에는 시·서·화를 '천한 재주(賤技)'라 여겨 남의 청탁을 사양하였다고 한다.
동생 강희맹(1424~1483)은 자 경순, 호는 사숙재·국오이며, 아버지 강석덕과 어머니 청송 심씨(심온의 외손) 사이에서 태어났다. 1447년 문과에 을과 1등으로 급제한 뒤 세조 대에 예조판서·형조판서를, 예종 대에는 남이의 옥사를 처리한 공으로 익대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성종 대에는 병조판서·이조판서·좌찬성 등을 지냈다. 뛰어난 문장으로 《동국여지승람》·《국조오례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농서 《금양잡록》과 문집 《사숙재집》, 골계집 《촌담해이》 등을 남겼다. 그의 묘는 경기도 시흥시 하상동에 있으며 1985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두 형제는 진주 강씨를 대표하는 명문 문인으로, 세종~성종대 관학과 예술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경기도 시흥시 하상동 (강희맹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