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 의열투쟁 · 대한민국장(1962)
| 생몰 | 1855 ~ 1920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진주 강씨 |
강우규(姜宇奎)는 평안남도 덕천 출신으로, 함경남도 홍원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한의사로 활동하며 사립학교와 교회를 세워 계몽운동을 펼쳤습니다. 1911년 만주로 망명하여 길림성에 신흥동을 건설하고 광동학교를 세워 동포 자제 교육과 독립운동 기반을 다졌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신흥동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그해 9월 2일 예순여섯의 노구로 서울 남대문역(현 서울역) 광장에서 새로 부임하는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지는 의거를 감행하였습니다. 총독 암살에는 실패하였으나 다수의 사상자를 낸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같은 해 9월 17일 은신처에서 친일 경찰 김태석에게 체포되어 재판에서도 의연한 태도를 굽히지 않았으며,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였습니다.
출처: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 위키백과, 나무위키
유해는 처음 서울 은평구 신사동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954년 수유리로, 1967년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으로 이장되었습니다.
장남 강중근과 손녀 강영재가 경성에 남아 있었으나, 1985년 손녀 강영재가 별세한 뒤 직계 후손은 절손된 것으로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