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신학자·여성운동가, 제4대 윤보선 대통령의 부인, 구속자 가족 인권운동가

| 생몰 | 1911 ~ 1997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곡부 공씨 |
공덕귀(孔德貴, 1911~1997)는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난 교육자이자 신학자, 여성운동가입니다. 본관은 곡부이며 아버지 공도빈과 어머니 방말선의 7남매 중 둘째 딸입니다. 위키백과는 그가 공자의 79대손이며 선대는 원나라 사람인 공소가 공민왕에게 시집온 노국대장공주를 따라 고려에 정착한 데서 비롯한다고 적습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바느질로 7남매를 키웠으며, 어머니에게서 신앙과 독립심을 배웠다고 회고했습니다.
동래 일신여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요코하마 공립여자신학교에서 공부하고 1940년 귀국해 김천 황금동교회 전도사로 일했습니다. 창씨개명을 끝내 거부하고 신사참배를 거절해 조선총독부의 요시찰 인물이 되었으며 대구 헌병대에 연행된 일도 있다고 합니다. 이는 위키백과의 서술이며 별도의 서훈은 확인되지 않아 독립유공자로 분류하지는 않습니다. 광복 후 조선신학교 여자신학부 교수로 일하다가 1949년 1월 서울시장이던 윤보선과 결혼했고, 1960년 남편이 제4대 대통령에 취임하며 영부인이 되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구속자가족협의회 회장, 양심범가족협의회 회장 등을 맡아 인혁당 사건과 민청학련 관련자의 석방과 탄원 운동에 앞장섰고,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회장,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이사장을 지냈습니다. 성매매와 기생관광 반대 운동도 이어 갔으며 1983년 『기생관광실태 조사보고서』를 펴냈습니다. 1986년 교회일치여성협의회 초대 회장을 맡았고, 1994년 자서전 『나, 그들과 함께 있었네』를 냈습니다. 1997년 11월 서울 안국동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고 충남 아산의 가족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1911년 통영 명정동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랐고 동래 일신여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전도사로 일하며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해 감시를 받았습니다.
1949년 윤보선과 결혼해 1960년 영부인이 되었고, 1970년대에는 구속자 가족 운동과 기생관광 반대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1994년 자서전을 출간했고 1997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같은 문중의 공진항, 공로명과 함께 곡부 공씨를 대표하는 근현대 인물입니다.
충남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 비룡산의 가족묘지에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윤보선 대통령과의 사이에 장남 윤상구, 차남 윤동구를 두었습니다.
윤보선 대통령의 부인으로, 신학자와 여성운동가로 구속자 가족 인권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위키백과는 1940년 창씨개명을 거부해 요시찰 인물이 되었다고 적습니다.
1994년 『나, 그들과 함께 있었네』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