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출신 기업가·외교관, 초대 주프랑스 공사와 제4대 농림부 장관, 호 요암
| 생몰 | 1900 ~ 1972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곡부 공씨 |
공진항(孔鎭恒, 1900~1972)은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난 기업가이자 외교관, 행정가입니다. 본관은 곡부이며 개성의 실업가 공성학의 둘째 아들입니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한 뒤 개성 제일공립보통학교에서 신식 교육을 받았고,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쿄 도시샤중학에 편입했으며 와세다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런던대학에서 공부하고 프랑스 파리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1932년 시베리아 철도로 만주를 거쳐 귀국한 그는 가업을 정리하고 만주 진출을 준비했습니다. 1935년 요하 연안 오가자에 약 20만 평의 농장을 건설했고, 뒤에 고향 유지 20여 명과 자본금 50만 원으로 만몽산업주식회사를 세워 북만주에서 농지를 개간했습니다. 만주의 한국인 농민이 소작농으로 살아가는 현실을 보고 자작농을 세우는 농장을 만들려 했다고 대백과사전은 설명합니다. 한성도서 전무, 신한공사 이사, 한성일보 부사장을 지냈다는 위키백과 기록도 있습니다.
광복 뒤인 1949년 6월 초대 주프랑스 대한민국 공사로 부임해 7월 신임장을 제정했고, 1950년 11월 농림부 장관이 되어 귀국했습니다. 이후 1957년 농협중앙회 회장, 1961년 고려인삼흥업 사장, 천도교 교령을 지냈다고 합니다. 『이상향을 찾아서』라는 희수기념문집이 전합니다. 아버지 공성학의 삼포 경영에서 시작한 가업을 3대에 걸친 근대적 농장으로 키우려 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그의 생애는 개성 상인 가문의 근대화 과정과 해방 뒤 신생 정부의 외교·농정이 만나는 지점에 있습니다. 만주 자작농장 구상과 농림부 장관, 농협중앙회 회장으로 이어진 경력은 농업을 중심으로 한 일관된 관심으로 설명됩니다. 한편 일제강점기의 만주 사업이 당시 정세 속에서 어떤 성격을 띠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연구자마다 다를 수 있어, 이 사이트는 사실만 적습니다.
개성의 곡부 공씨 인삼 경영 집안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나 보성고보, 도시샤중학, 와세다대학, 런던대학, 파리의 사회학 공부를 거쳤습니다.
1935년 오가자 농장을 세우고 만몽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해 자작농 중심의 농장을 구상했습니다.
1949년 초대 주프랑스 공사, 1950년 11월 농림부 장관을 지냈고 1957년 농협중앙회 회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곡부 공씨 가운데 근현대 정계·재계에 이름을 올린 대표 인물입니다. 같은 문중의 공덕귀, 공로명과 함께 소개됩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개성의 실업가 공성학입니다.
개성 출신 기업가이자 외교관으로 초대 주프랑스 공사와 제4대 농림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개성의 실업가 공성학입니다.
만주 농지 개간을 위해 세운 회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