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때 초계문신친시에서 장원한 문신, 정언·병조좌랑 역임
| 생몰 | 1769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곡부 공씨 |
공윤항(孔胤恒, 1769~?)은 조선 후기 정조 때의 문신으로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본관을 곡부로 적습니다. 증조부는 공익성, 할아버지는 공학수, 아버지는 공원인이며 어머니는 김수영의 딸입니다. 생몰 가운데 사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집안 형편은 매우 어려웠으나 학문이 뛰어나 왕명으로 특별히 성균관에 입학했다고 합니다. 1792년(정조 16)에는 초계문신친시에서 장원을 차지했습니다. 초계문신제는 정조가 규장각을 중심으로 젊고 유능한 문신을 뽑아 따로 공부시키고 시험으로 실력을 확인하던 제도로, 그 시험에서 으뜸을 했다는 것은 학문을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이어 1794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했습니다. 이 해는 공윤항이 급제한 뒤 곡부 공씨가 창원에서 곡부로 본관을 고친 해와 같아, 공씨 집안이 정조의 관심 속에 주목받던 시기와 겹칩니다.
1796년 정언이 되어 언관으로 활동했고, 이후 병조좌랑을 지냈습니다. 곡부 공씨의 과거 급제자 명단에는 문과 급제자로 공서린·공종주 등과 나란히 오르고 음관 명단에도 이름이 보입니다. 기록은 『정조실록』과 『국조방목』에 근거하며, 그 밖의 생애는 자세히 전하지 않아 이 사이트에서는 확인된 범위만 적습니다.
공윤항의 사례는 가세가 기울어도 학문으로 길을 연 조선 후기 선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곡부 공씨의 문과 급제자는 조선 시대 8명으로 정리되는데, 공윤항은 그 가운데 정조 시대의 인물로서 본관이 창원에서 곡부로 바뀌는 시기의 문중을 대표합니다. 그가 남긴 문집이나 저술은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증조부 공익성, 할아버지 공학수, 아버지 공원인으로 이어지는 집안에서 태어나 가세가 어려웠으나 학문으로 이름이 높아 왕명으로 성균관에 들어갔습니다.
1792년 초계문신친시에서 장원했습니다. 초계문신은 정조가 규장각 중심으로 길러낸 젊은 문신들입니다.
1794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했고 1796년 정언, 뒤에 병조좌랑을 지냈습니다.
1794년은 창원 공씨가 곡부로 본관을 고친 해입니다. 시기를 거슬러 공서린이 궐리사 인연으로 주목받은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묘소와 사망 연도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정조 때 초계문신친시에서 장원한 용인 출신의 곡부 공씨 문신으로 정언과 병조좌랑을 지냈습니다.
정조가 규장각 중심으로 선발한 젊은 문신들에게 치르게 한 시험입니다.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