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국씨 시조, 송에서 귀화한 고려 사신, 추성군
| 생몰 | 1101(위키백과) |
| 시대 | 고려 인종 때 |
| 본관 | 담양 국씨 |
국주(鞠周)는 담양 국씨의 시조입니다. 위키백과 담양 국씨 항목에 따르면 1101년(송 휘종 원년) 중국 절강성 항주 출신의 공경대부로, 금나라가 송 흠종을 납치한 정강의 변(1127)을 피해 1128년(고려 인종 6) 고려에 들어와 귀화했다고 합니다. 이 연대와 행적은 거의 단일한 자료에 의존하므로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고려에서는 감정관으로 출사했고,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군신 관계를 요구하는 금의 요구에 맞서 대등한 선린 관계를 맺는 데 공을 세웠다고 전합니다. 그 공으로 인종에게서 삼중대광 추성군에 봉해졌고, 담양을 본관으로 받았다고 합니다. 담양은 백제 추자혜군, 신라 경덕왕 때 추성군이었던 곳으로, 봉호 '추성'이 옛 담양의 이름과 같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시조 이후 2세 국지원(문하시랑 평장사), 3세 국영돈(문하찬성사), 4세 국성윤(충청안렴사), 5세 국호(좌정승), 7세 국담(대제학), 8세 국량(병부상서)이 고위직을 지냈다고 위키백과는 세계를 소개합니다. 이 세계는 문헌으로 교차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한편 국씨의 먼 시조를 중국 고대 후직의 후손 국도(鞠陶)에서 찾는 설은 전설에 가까운 것으로, 사실로 단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127년 정강의 변 이후 1128년 고려에 들어왔고, 인종 때 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고 합니다. 금이 요구한 군신 관계에 맞서 선린 외교를 이끌었다는 내용은 위키백과의 서술입니다.
담양은 백제 추자혜군, 신라 추성군, 1018년 담양군으로 개편되었고, 1413년 담양도호부가 되었다가 1728년 현으로 강등되었으며 1914년 창평군이 병합되었습니다.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송나라에서 고려로 귀화한 국주입니다. 인종이 담양을 본관으로 주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