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문신(호부상서), 호 복애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담양 국씨 |
국유(鞠襦)는 담양 국씨 9세로 소개되는 고려 말의 문신으로 호는 복애입니다. 위키백과는 그가 호부상서 겸 판의금을 지냈다고 적습니다. 고려 공민왕 때 최영의 탐라(제주) 정벌을 돕고 곡주의 반란을 평정했다고 하는데, 이 서술의 세부는 다른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고려가 망하자 개성 근처 두문동에 들어가 절개를 지켰다고 전하며, 태조 이성계가 그 충절을 기려 자손을 담양의 관리로 임명했다고 합니다. 두문동 72현의 명단에 그가 실려 있는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담양 국씨 가문이 고려 충절을 내세우는 전승의 하나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생몰년과 묘소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같은 항렬의 조상으로 7세 국담(대제학), 8세 국량(병부상서)이 위키백과 세계에 올라 있습니다.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들어갔고, 이성계가 충절을 기려 자손을 담양 관리로 임명했다고 전합니다. 전승이므로 사실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시조 국주의 9세손으로 소개됩니다.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담양 국씨 9세이며 고려 말 호부상서를 지냈다고 전하는 문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