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금 모집과 청년운동에 힘쓴 예천 출신 독립운동가, 호 중산, 건국훈장 애족장
| 생몰 | 1936 |
| 시대 | 일제강점기 |
| 본관 | 예천 권씨 |
권원하(權元河)는 일제강점기 경북 예천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호는 중산(仲山)입니다. 장강뉴스의 예천 권씨 소개는 그를 권오기의 14세손으로 적고 있어 예천 권씨로 분류됩니다. 국가보훈부 경북북부보훈지청과 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20년 2월 군정서의 밀명을 받고 국내에 들어와 군자금 조달과 무관생도 모집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같은 해 7월 최재화, 조강제, 배승환, 김영철 등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출옥 후에는 고향 예천에서 조선일보 지국장을 맡아 신문 일을 하면서 은밀히 항일운동을 이어갔습니다. 1927년 6월에는 예천군 청년대회를 열어 신간회를 적극 지원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신간회는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이 함께한 항일 단체로, 지방 청년들이 지회 설립을 뒷받침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여러 해에 걸친 옥고와 고문의 후유증으로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36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장강뉴스는 전합니다. 다만 사망 연도는 이 한 곳의 보도에 근거하므로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에서 확인하시기를 권합니다.
정부는 1990년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국가보훈부는 2003년 2월 예천군의 '중산 권원하선생 독립 기념비'를 현충시설로 지정했습니다. 지역 게시글은 그가 예천 용문면의 병암정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전하는데, 병암정은 예천 권씨 병암문중이 관리하는 정자로 별묘에 권맹손·권오기·권오복·권용을 모십니다.
권원하의 출생 연월일과 본관의 직접적 표기는 보훈 기관 기사에서 확인되지 않았고, 예천 권씨 소개 글과 후손 관계로 분류했습니다. 정확한 신상은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이나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의 해당 항목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지역의 안동 권씨 독립운동가와 혼동하지 않도록 유의하세요.
국가보훈부는 2003년 2월 예천군의 '중산 권원하선생 독립 기념비'를 현충시설로 지정했습니다. 이 기념비의 정확한 소재지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습니다.
1920년 7월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중산(仲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