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병춘 咸秉春

법학자·외교관, 주미대사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고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순직. 아호 창은(고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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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932 ~ 1983
시대대한민국
본관강릉 함씨

생애 약력

함병춘(咸秉春, 1932~1983)은 법학자이자 외교관으로 본관은 강릉이며 아호는 창은(滄隱) 또는 고송(苦松)입니다. 1932년 2월 26일 서울 연못골, 연동교회 목사 사택에서 태어났고, 제3대 부통령 함태영과 고숙원 사이의 14남매 중 막내였습니다. 1943년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의 양육을 받았으며, 6·25 전쟁 뒤 공군 장교로 복무해 중위로 예편했습니다.

1953년 미국으로 유학해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1959년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률과학박사(S.J.D.) 학위를 받은 뒤 연세대 법학 교수로 부임했습니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의 외교안보 특별보좌관, 이어 정치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냈고, 1973년 12월 주미 한국대사에 임명되어 1974년 부임했습니다. 위키백과는 그가 1975년 핵 관련 계약 시도를 중단하도록 설득하는 데 관여했고, 1976년 코리아게이트 이후 주한미군 철수 여론을 누그러뜨리는 데 힘썼다고 적습니다.

1977년 귀국해 외무부 본부대사가 되었고, 1979년 외교담당 특별보좌관, 1979년 12월 최규하 대통령의 외교안보특보로 일했습니다. 1982년 6월 제9대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되어 이듬해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동남아 특사 순방을 다녔습니다.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을 수행하던 중 미얀마 아웅산 묘역에서 북한 공작원들의 폭탄 테러로 51세에 순직했습니다. 같은 날 사건으로 수행원과 기자 등 여러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유해는 10월 11일 김포공항에 도착했고 청조근정훈장이 추서되었으며, 10월 13일 국민장으로 치러져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저서로 『한국의 문화전통과 법』이 있고, 평가는 영어 설득력과 외교 감각이 높이 평가되는 한편 행정 경험이 부족했다는 평도 함께 소개됩니다.

학자에서 외교관으로

1959년 하버드 로스쿨에서 학위를 받고 연세대 법학 교수가 되었으며, 1966년 예일대에서 약 2년간 연구했습니다. 1970년 대통령 특별보좌관으로 정부에 들어가 1973년 주미대사에 임명되었습니다.

아웅산 사건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아웅산 묘역에서 전두환 대통령 일행의 참배를 준비하던 중 폭탄이 터졌고, 함병춘은 이 사건으로 순직했습니다. 정부는 청조근정훈장을 추서하고 국민장을 치렀습니다.

묘소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1983년 10월 13일 국민장).

후손

배우자는 화가 심효식이고, 장남 함재봉(연세대 교수, 아산정책연구원 원장)과 차남 함재학(연세대 법학 교수)을 두었다고 위키백과에 소개됩니다.

함병춘 자주 묻는 질문

함병춘은 함태영의 아들인가요?

네, 함태영의 14남매 중 막내입니다. 위키백과는 함병춘을 강릉 함씨로 적습니다.

함병춘은 어떻게 세상을 떠났나요?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아웅산 묘역 폭탄 테러로 순직했습니다. 당시 51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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