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문신, 형조판서·좌리공신·의정부 좌참찬. 자 문명, 호 송담, 시호 평양, 청백리로 평가
| 생몰 | 1408 ~ 1479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강릉 함씨 |
함우치(咸禹治, 1408~1479)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강릉이고 자는 문명(文命), 호는 송담(松潭), 시호는 평양(平襄)입니다. 아버지는 조선 개국공신 동원군 함부림이며, 문음(門蔭), 곧 아버지의 공을 인정받는 음서로 관직에 올라 사헌부 감찰이 된 뒤 고부군수·군기부정·나주목사를 지냈다고 전합니다.
세조·성종 대에 중앙과 지방의 요직을 번갈아 맡았습니다. 1451년(문종 1) 판사복시사, 1453년(단종 1) 첨지중추원사와 동부승지, 1455년(세조 1) 공주목사에 임명되었고, 1456년 가선대부에 올랐습니다. 1457년 함길도관찰사, 1459년 대사헌을 거쳐 중추원부사가 되었으며, 충청도·전라도·경상도 관찰사와 개성유수도 역임했습니다. 1465년 형조참판, 1466년(세조 12) 자헌대부와 동원군 봉작, 1467년 정헌대부를 받았습니다.
1470년 성종이 즉위한 해 형조판서가 되었고, 1471년(성종 2) 좌리공신에 책훈되며 숭정대부에 올라 의정부 우참찬을 맡았습니다. 1473년 좌참찬으로 옮겼으나 병을 이유로 사직하자 동원군과 봉조하에 제수되었고, 1479년 5월 29일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종실록』의 졸기는 그가 청렴하고 간결하며 재산을 불리는 데 힘쓰지 않아 청백리로 알려졌고, 일 처리가 상세하고 명확해 가는 곳마다 좋은 치적을 남겼다고 평합니다. 아버지 함부림이 개국 초의 공신이었다면, 아들 함우치는 세조에서 성종 대까지 여러 임금을 거치며 공신 가문의 명맥을 이은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서로 시작해 문종 대 판사복시사(1451), 단종 대 동부승지(1453), 세조 대 공주목사(1455)·함길도관찰사(1457)·대사헌(1459)을 거치고, 1465년 형조참판, 1470년 형조판서에 올랐습니다. 연도가 확인되지 않는 충청·전라·경상 관찰사와 개성유수 이력도 전합니다.
1471년 성종 즉위를 도운 공신 행렬인 좌리공신에 책훈되었고, 1473년 병으로 사직하자 동원군과 봉조하를 받았습니다. 봉조하는 퇴직한 공신·고위 관료에게 주던 명예직입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위키백과에는 아버지 함부림 외의 가족 관계가 적혀 있지 않아 자녀와 후손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조선 개국공신 함부림의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공으로 음서를 통해 관직에 올랐다고 전합니다.
성종실록 졸기에 청렴하고 간결하며 재산을 늘리는 데 힘쓰지 않았다는 평이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