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대훈 咸大勳

소설가·번역가·연극인, 극예술연구회 창립 참여, 국립경찰전문학교장. 아호 일보.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 오름

함대훈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함대훈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 (저작자 미상, Wikimedia Commons)
생몰1907 ~ 1949
시대일제강점기~대한민국
본관강릉 함씨

생애 약력

함대훈(咸大勳, 1907~1949)은 소설가이자 번역가, 연극인이며 아호는 일보(一步)입니다. 위키백과 분류에 따라 강릉 함씨로 소개되며(본문에는 본관이 명시되지 않아 문중 확인이 필요합니다), 1907년 8월 21일 황해도 송화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 도쿄외국어학교에서 러시아문학을 공부하다 중퇴했습니다.

1928년경 해외문학연구회를 조직하고 《해외문학》·《문예월간》에 번역과 평론을 실으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31년 김진섭·이하윤·정인섭 등과 극예술연구회를 만들어 창단 공연작 고골리의 《검찰관》을 번역했고, 1933년에는 임화와 백철 사이의 '형상 논쟁'에 참여했습니다. 소설로는 남녀 간 애정을 다룬 통속 소설이 많았고 대표작 《순정해협》은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정인섭·유치진과 함께 국민연극연구소를 세워 소장을 맡았고 조선문인협회에서도 활동했습니다. 위키백과는 친일 저작물이 11편 확인되며, 1940년 《매일신보》에 쓴 〈우리들과 지원병〉이 대표적이라고 적습니다. 그는 2002년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705인 명단에 모두 올랐습니다. 광복 직후 한성일보 편집국장을 지냈고 이후 경찰에 투신해 미군정 군정청 공안국장·공보국장을 거쳐 국립경찰전문학교장이 되었으며, 1949년 3월 21일 재직 중 뇌일혈로 41세에 별세했습니다. 문학과 번역, 연극 운동의 업적과 일제 말기 협력 행적을 함께 기억해야 하는 인물입니다.

문학·연극 활동

1931년 극예술연구회 창립에 참여해 고골리 《검찰관》을 번역했고, 1933년 임화와 백철의 '형상 논쟁'에서 프로문학의 본질에 관한 견해를 밝혔습니다. 대표작 《순정해협》은 영화화되었습니다.

친일 논란

위키백과는 국민연극연구소 소장·조선문인협회 활동 등 일제 말기 행적과 친일 저작물 11편을 적고, 여러 명단에 올랐음을 소개합니다. 이 때문에 이 글은 '친일' 분류를 붙였습니다. 평가의 자세한 내용은 민족문제연구소 등 원자료를 참고하세요.

묘소

묘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손

후손에 관한 자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함대훈 자주 묻는 질문

함대훈의 대표작은 무엇인가요?

소설 《순정해협》이 대표작이며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고골리 《검찰관》 번역도 알려졌습니다.

왜 친일 분류가 붙었나요?

일제 말 국민연극연구소 소장 등으로 활동하고 친일 저작물을 남긴 것이 확인되어 2009년 정부 발표 705인 명단 등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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