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동승〉·〈산허구리〉로 알려졌고 해방 후 월북, 일제 말 작품에 대한 평가가 갈립니다
| 생몰 | 1915 ~ 1950 |
| 시대 | 일제강점기~한국전쟁 |
| 본관 | 강릉 함씨 |
함세덕(咸世德, 1915~1950)은 극작가로, 위키백과 분류에 따라 강릉 함씨로 소개됩니다(본문에는 본관이 명시되지 않아 분류에 근거한 것이므로 문중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1915년 5월 23일 강화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전라남도 목포와 인천에서 자랐습니다. 1936년 유치진에게 사사한 뒤 단막극 〈산허구리〉를 《조선문학》에 실어 등단했습니다.
1939년 동아일보 주최 제2회 연극대회에서 〈동승〉이 공연되어 극연좌상을 받았고, 194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해연〉이 입선했습니다. 〈동승〉(원제 〈도념〉)은 높은 평가를 받아 영화로도 만들어진 대표작입니다. 1941~1942년에는 유치진이 이끈 현대극장에서 《흑경정》, 《에밀레종》, 《남풍》, 《황해》, 《백야》 등을 발표했습니다.
광복 후 낙랑극회를 조직했고 조선연극건설본부·조선연극동맹 등 좌익 연극단체에 참여하며 《산적》, 《기미년 3월 1일》, 《태백산맥》, 《고목》 등을 썼으며, 1947년 희곡집 《동승》을 펴냈습니다. 한국전쟁 전에 월북해 《산사람들》(1949)과 풍자극 《(소위) 대통령》(1950)을 발표했고, 전쟁이 일어나자 조선인민군 종군 작가로 서울에 들어왔다가 1950년 6월 29일 사고로 숨진 것으로 전합니다. 위키백과는 일제 말 작품 가운데 《에밀레종》에서 일본을 우호적으로 그렸고 《황해》는 지원병제를 선전했다고 서술하며, 2002년 친일 문학인 명단과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올랐다고 적습니다. 다만 평가에 이견이 있어 연극계 일각에서는 연구가 부진했다는 지적도 있고, 이 글에서는 정부의 공식 판정이 확인되지 않아 별도 분류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동승〉은 1939년 연극대회에서 공연되어 극연좌상을 받은 작품으로, 어린 동자승 도념을 주인공으로 합니다. 높은 평가를 받아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일제 말기 작품의 성격과 해방 후 월북 때문에 오랫동안 연구가 활발하지 못했고, 월북 문인 해금 이후에야 재조명이 이루어졌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작품의 가치와 시대 협력 문제는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묘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손에 관한 자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동승〉과 데뷔작 〈산허구리〉가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위키백과 분류에 따라 강릉 함씨로 소개했으며 본문에 본관이 명시되지 않아 문중 확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