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전기 문신·서예가, 이자겸의 난 때 순절
| 생몰 | 1126 |
| 시대 | 고려 전기 |
| 본관 | 남양 홍씨 |
홍관(洪灌, ?~1126)은 고려 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입니다. 본관은 남양(南陽)이고 자는 무당(無黨)이며, 당성군(唐城郡, 지금의 화성 남양 일대) 출신입니다. 시호는 충평(忠平)입니다. 공민왕 때 문하시중을 지낸 홍언박이 그의 7세손입니다.
숙종 때 직사관(直史館)으로 있으면서 왕명을 받아 궁궐 집상전(集祥殿)의 편액을 쓰고, 『서경(書經)』 무일편(無逸篇)을 병풍에 썼습니다. 1111년(예종 6) 어사중승이 되었고, 이듬해 동북면병마사가 되었으며, 1113년에는 김의원과 함께 요(遼)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습니다. 그 뒤 문덕전·청연각·보문각의 학사를 지내며 예종 때 『편년통재속편(編年通載續編)』을 엮는 일에 참여했고, 국자좨주를 지냈으며, 1123년에는 동지공거로서 과거를 주관하기도 했습니다.
글씨로 이름이 높아, 신라의 명필 김생(金生)의 필법을 따랐다고 합니다. 『해동역사』에는 보문각·청연각·보전화루(寶篆華樓)의 편액을 그가 썼다고 적혀 있어, 고려 전기 궁중 편액을 대표하는 서예가로 꼽힙니다.
1126년(인종 4)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자 나이가 많았는데도 궁궐로 들어가 인종을 호위했고, 왕이 연덕궁으로 옮겨질 때도 따라가다가 서화문(西華門)에서 척준경의 군사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충절을 기려 높은 관작이 추증되고 충평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이 일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그의 충절로 기록되었습니다. 뒷날 남양 홍씨 문중은 경북 군위의 양천서원(1798년 추가 배향)과 경남 진주의 광제서원에서 그를 기렸습니다.
그가 편액을 쓴 보문각과 청연각은 예종 때 궁궐 안에 둔 학문 기관으로, 왕이 학사들과 경전을 강론하던 곳입니다. 그의 행적과 글씨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고려사절요』와 오세창의 『근역서화징』 등에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