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중장 (친일인명사전 수록)
| 생몰 | 1889 ~ 1946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남양 홍씨 |
홍사익(洪思翊)은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일본 육군대학을 나와 일본군 중장까지 오른 조선인 군인입니다. 본관은 남양으로, 토홍계 출신이며 숙종 때 남인의 지도자였던 홍우원(洪宇遠)의 후손입니다.
경기도 안성 대덕(옛 소촌면)에서 몰락한 양반 집안인 홍이유(洪理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고, 어려서 아버지를 잃어 스무 살 가까이 많은 맏형 홍사용의 손에 자랐습니다. 출생 연도는 호적상 1887년, 묘비상 1889년 등으로 기록이 엇갈립니다. 어려서 한학을 배웠으나 과거제가 폐지되자 집안 어른인 대한제국 육군 장교 홍중유의 권고로 군인의 길을 택했습니다. 1905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들어갔으나 1907년 군대가 해산되고 학교마저 폐지되자, 1909년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육군중앙유년학교에 편입했습니다.
1914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26기로 졸업했고, 이후 일본 육군대학 정규 과정을 마쳤습니다. 1941년 소장, 1944년 중장으로 진급하였습니다.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스스로 "나는 조선인 홍사익이다"라고 밝혔던 것으로 전하며, 일제강점기에 일본 육군대학 정규 과정을 마친 유일한 조선인 평민 출신 장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친일 행적 1944년 3월 필리핀 주둔 일본 남방군 총사령부 병참감으로 임명되어 약 10개월간 연합군 포로수용소를 관리하였습니다. 전후 마닐라 전범 재판에서 부하들의 포로 학대에 대한 책임을 물어 사형을 선고받았고, 재판 내내 변명하지 않은 채 1946년 9월 처형되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습니다.
일본 유학 동기로는 이응준·김석원·지청천 등이 있었습니다. 광복 뒤 그의 아들이 연좌되어 직장에서 파면되기도 했고, 1980년대 언론인 송건호 등이 그의 삶을 다시 조명하면서 평가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