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 만주방면 · 대한민국장(1962)

| 생몰 | 1868 ~ 1943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남양 홍씨 |
홍범도(洪範圖, 1868~1943)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대표적 의병장이자 독립군 지휘관입니다. 본관은 남양(당홍계)입니다. 1868년 평양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홉 살에 아버지마저 잃었습니다. 머슴살이를 하다가 평양 감영의 나팔수로 들어갔고, 이후 제지공장 노동자, 금강산 신계사의 상좌승 등을 거쳐 포수로 살며 뛰어난 사격 솜씨와 산악 지리에 밝은 강점을 길렀습니다.
1907년 일제가 총포화약단속법으로 포수들의 총을 거두려 하자, 차도선 등과 함께 함경도 산포수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북청 후치령 등지에서 일본군을 습격하고 갑산·삼수·혜산·풍산 일대에서 신출귀몰한 유격전을 펼쳐 '날으는 홍장군'으로 불렸습니다. 이 무렵 일본군에 붙잡힌 아내 단양 이씨는 그를 회유하라는 요구를 거절하다 옥사했고, 맏아들 홍양순은 1908년 정평배기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1910년 국권을 빼앗긴 뒤 연해주와 만주로 건너가 무장 독립운동을 이어갔습니다. 1919년 대한독립군 사령관이 되어 국내 진공 작전을 펼쳤고, 1920년 6월 봉오동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으며(봉오동 전투), 같은 해 10월에는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등과 함께 청산리 전투에 참전했습니다. 이후 대한독립군단의 부총재를 맡았습니다.
자유시 참변 이후 연해주에 머물며 농장을 일구었고,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옮겨져 크질오르다(키질로르다)에서 집단농장 일을 하고 말년에는 고려극장 관리인으로 일하다가 1943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으며, 2021년 8월 유해가 국내로 봉환되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출처: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위키백과 등 공개 자료 정리.
아내 단양 이씨와의 사이에 아들 홍양순·홍용환을 두었다. 장남 홍양순은 아버지와 함께 의병 항쟁에 참여하다 1908년 정평 배기 전투에서 전사하였고, 아내 단양 이씨는 일본군에 붙잡혀 옥사하였다.